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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 쓰임이 있다

입력
2018.06.2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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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어떻든지 간에 이루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 회담을 통해 넓게는 국제적으로, 좁게는 한반도 내의 평화에 있어서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 회담이 평화에 있어서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하고 있고 다시 평화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20년 넘게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고, 또 인도적인 사업을 해 온 사람으로서 이후 북미 관계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계속해서 관심 있게 살펴보겠지만 일단은 그 적대적인 관계가 평화를 얘기하는 관계로 바뀌었음을 높이 평가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번 북미 회담은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하게 하는데, 역대 최악의 적대 관계를 연출했던 그들이 어떻게 평화 관계를 연출케 되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이런 그들이 다시 돌변하여 최악의 관계를 다시 연출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놀랍기만 합니다. 작년 이 칼럼에서 썼듯이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향성과 경향성과 방식들에 매우 비판적인 편이고, 제가 미국에 얼마간 살았던 사람으로서 미국에 대해 애증이 있지만 그래도 미국 사람들의 양식을 믿고 있었는데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 때문에 미국인들에 대해 엄청난 실망을 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취한 행동들이나 이란과의 관계에서 취한 행동이나 특히 이민자들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저이지만 이런 사람이 어떻게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이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놀라워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트럼프만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본래 사람이란 것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다 각기 쓰임이 있는 것이고, 좋은 쪽에서 아무 쓰임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다 쓰임이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북한과 인도적인 사업을 할 때 어떤 사업을 놓고 북쪽 상대와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북쪽의 관료들이 자기 인민을 위한 일에 방해를 한다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북한 인민을 사랑하고, 정작 그들은 자기 인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불신이 밑에 깔린 상태에서 협상을 계속 했기에 진전이 더디었고, 결국에는 깨어지고 말았으며, 그래서 저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보름 정도 지난 후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북측으로부터 왔습니다. 더 높은 사람이 수정된 제안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때 천주교 신부인 제가 신앙인으로서 든 것이 ‘하느님께서는 빨갱이도 당신 사업의 도구로 쓰시는구나!’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저는 나만 좋은 쓰임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쓰임은 좋게 생각하지 못했던 저를 크게 반성하게 되었고, 이런 반성에 기초하여 상대를 신뢰하며 협상을 이어 가자 이내 협상이 타결이 되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은 다 각기 다른 쓰임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각기 다른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나쁜 쓰임만의 인간이 아니라 좋은 쓰임의 인간이기도 하고, 이런 면에서 나쁘게 쓰이는 사람도 저런 면에서는 좋게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신뢰이고, 신뢰할 때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신을 하면 모든 가능성이 닫힙니다. 지난 정권들에서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닫혀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불신 때문이 아닙니까? ‘저 사람은 도둑이야’ 하고 생각하면 우리는 문을 닫고 자물쇠로 잠그겠지요. 불신이 자물쇠라면 믿음은 열쇠입니다.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면 모든 가능성을 닫을 것이고, 모든 사람을 믿으면 모든 가능성이 열립니다. ‘도둑이 없는 마을, 울타리가 없는 마을’이 아니라 ‘울타리가 없는 마을, 도둑이 없는 마을’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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