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라 불리던 소녀가 수용시설에서 탈출한 뒤 기억을 잃었다. 모두가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건, 소녀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꽁꽁 숨긴 채 살아가던 소녀는 어느 날 TV에 출연하면서 정체가 노출된다. 한없이 착한 모범생 소녀는 기억을 찾은 뒤 다시 '마녀'로 변모하게 될까.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마녀' 언론 시사회가 진행됐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신세계' '브이아이피' 등을 연출한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조민수와 박희순 등 소위 '믿고 본다'는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 게다가 주연을 맡은 김다미는 무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신예다.
시작은 화려했다. 시설에서 자행되는 '아이들'에 대한 연구 모습이 흑백의 이미지로 나열돼 서사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내 피로 범벅이 된 시설과 도망치는 소녀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마녀'의 탄생을 알린다.
그로부터 10년 후, 고등학생이 된 자윤(김다미)은 집안의 농장 일을 도우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따뜻한 부모와 절친한 친구를 둔 그는 점점 어려워지는 집안 형편에 시름이 깊어진다. 그때 친구 명희(고민시)는 "상금이 5억"이라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것을 추천한다.
천부적 노래 실력을 지닌 자윤은 지역 예선을 가뿐히 통과하고, 서울로 가 본격적인 서바이벌에 돌입한다. 하지만 행복함도 잠시, 자윤에게 낯선 자들이 접근하기 시작한다. "나 기억 안 나?"라며 접근하는 귀공자(최우식)와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다가오는 남자들에게서 자윤은 서늘한 기운을 감지한다.
자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자신을 애지중지 길러준 부모다. 점점 위협의 강도가 높아지고, 극한의 위기 상황에 놓이자 자윤은 자신도 모르던 엄청난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는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스스로가 누군지 깨닫기 위해 제 발로 이들을 따라 나선다.
이후, 반전의 상황들이 펼쳐지며 영화는 결말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무척이나 강렬하다. 파괴력과 속도감이 넘치는 스타일로 액션의 새 장을 연다. 좁은 공간을 활용해 벽을 타고 가로지르거나, 공중으로 솟구치는 배우들의 모습은 박진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국내 액션물들은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드라마와 액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라, 중반부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선혈이 낭자하는 액션신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느슨해진 관객의 긴장감을 조이는 구조다.
다양한 작품을 거치며 눈에 띄게 성장한 최우식의 캐릭터 변신은 신선했다. 표정과 눈빛에서 공들여 캐릭터에 몰입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검은 의상을 입은 채 등장하는 귀공자(최우식)와 4인방은 할리우드 SF 영화 속 캐릭터들을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 길러진 아이들이라는 설정에 따라 틈틈이 영어 대사를 내뱉는 것도 오히려 극 몰입도를 저하시키는 요소다.
그럼에도, 많은 장르가 뒤섞여 있기에 볼거리는 풍부하다. 짜릿하고 독창적인 액션을 구현해낸 감독의 기량도 높이 살 만하다. CG 역시 어색함 없이 극에 스며들었고, 강렬한 타격감은 스크린을 뚫고 나올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보기 드문 '여성 액션물'이라는 것도 반가운 지점이다. 복합적 면모를 지닌 소녀 자윤 캐릭터는 실로 매력적이다. 신예 김다미는 '마녀'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자연스럽고 맑은 이미지를 지닌 그는 '은교'의 김고은을 떠올리게 한다. 자윤의 친구 명희로 등장한 고민시는 통통 튀는 매력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조민수와 박희순은 무게감 있는 연기로 극에 긴장감을 싣는다. 미스터 최를 연기한 박희순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을 휘감는다. 조민수가 연기한 닥터 백은 당초 남자로 설정돼 있었지만, 제작진의 깊은 신뢰로 조민수가 캐스팅되면서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다. 덕분에 영화 속의 또 다른 '마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오는 27일 개봉.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