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후속조치로 징계절차에 회부한 현직 법관들 중 재판 보직에서도 제외한 판사 5명의 면면이 확인됐다. 대법원 스스로 이들의 관여 정도와 책임의 무게가 크다고 판단한 데다, ‘재판 거래’ 의혹 관련 문건 작성자 등 핵심 인물이 포함돼 있어 검찰 수사선상에 우선 순위로 오를 전망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이 이달 15일 밝힌 징계 대상자 13명 중 재판 업무에서도 배제한 법관 5명 중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3명은 정모(42ㆍ사법연수원 31기) 울산지법 부장판사, 김모(42ㆍ32기)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 박모(41ㆍ32기) 창원지법 부장판사다. 이들의 인사 정보에는 ‘사법 연구’ 발령이 찍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견 판사는 “통상 비위가 심각하진 않다고 간주된 판사는 법원에서 서류심사만 하는 약식명령 재판부로 가는데 사법 연구는 사실상 ‘대기 발령’을 내린 강한 조치”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재판 배제는 관여 정도와 책임의 비중을 달리해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징계대상자 중에서도 특히나 재판과 법관 독립 등 헌법 가치 훼손 행위가 큰 판사들에 대한 강력한 내부 조치라는 얘기다. 이민걸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ㆍ이규진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차관급 법관 2명도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지시 등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로 사법연구 발령이 유지되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재판 뒷거래’ 의혹 핵심 연루자여서 검찰 조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졌다. 2013년 초부터 2015년 2월까지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하며, 당시 임종헌 기획조정실장 지시를 받고 ‘재판 관여’ 의심을 산 문건을 다수 작성했다.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등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을 두고 청와대 의중을 살피고 재판부 동향 파악까지 고려하는 내용의 문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법원 추가조사위(2차 조사)에서 원 전 원장 관련 문건을 작성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특별조사단(3차)에선 “내가 썼다”고 실토했다. 그는 법원에 돌아가서도 임 전 차장 지시에 따라 대통령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려 노력한 판결들을 실은 ‘현안관련 말씀자료’를 작성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열흘 앞둔 때였다.
정 부장판사의 후임 심의관이던 박 부장판사도 청와대 구미에 맞는 대응 문건을 작성했다. 2015년 4월 여권 인사가 대거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대응방향 검토’ 문건에서 ‘청와대 협조와 우호관계 유지 방안으로 기소 전까지 적정한 영장 발부’와 같은 민감한 표현을 담았다. 특히나 영장에 민감한 검찰이 눈 여겨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 부장판사는 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일 때 사법행정에 반기를 든 판사들 성향ㆍ동향 등을 뒷조사하고 적색, 청색 등으로 분류하는 문건을 작성했다.
검찰도 재판 배제 판사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이들을 상대로 본격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자체 조사에서 윗선 관여에 ‘모르쇠’로 일관한 임 전 차장 진술은 기대할 게 사실상 없는 터라,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문건 작성 경위와 최종보고선, 문건 내용 실행 여부 등을 다져가는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 부장판사 등은 재판에서 빠진 데다 대법원도 관여 정도가 크다고 본 만큼 사법부 반발도 크게 없을 것으로 보여 검찰의 부담도 덜하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날 대법원에 임 전 차장과 김 부장판사 등 관련자 하드디스크를 포함한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자료를 서면으로 요청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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