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용, 산업생산 등 주요 지표 부진을 근거로 제기되고 있는 경기 하강 내지 침체론을 일축하고 한은 전망치(올해 3.0% 성장)에 부합하는 경기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다음달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은 수장이 금리 인상 여지를 넓히기 위한 신호를 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재는 19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최근 발표된 (4월)산업활동동향 자료나 모니터링 결과를 감안하면 우리 경제는 소비와 수출을 중심으로 현재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지난 4월 전망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가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해 물가상승 유발 없이 최대한 이룰 수 있는 성장률을 뜻하는데, 한은의 공식 추정치는 2016~2020년 2.8~2.9%이다. 큰 변수가 없다면 올해 우리 경제가 한은이 전망한 3% 수준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란 의미다.
이 총재는 “(다음달 경기전망 수정 발표를 앞두고) 국내외 경제상황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점검하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다음달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비롯한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하는 동시에 성장률ㆍ물가 등 경기전망치를 수정 발표할 예정이다. 한은이 지난 4월 발표된 직전 전망치를 유지할 경우 하반기 기준금리 추가 인상 전망도 강화될 전망이다.
이 총재는 다만 ▦신흥국 금융불안 확대 ▦미중 무역갈등 심화를 경기 하방 위험(리스크) 요인으로 꼽으며 “(경기 전망에) 불확실성이 높다”는 단서를 달았다. 또한 3개월(2~4월) 연속 월 10만명대에 머물다가 지난달 7만명대로 하락한 취업자 수 증가 통계를 언급하며 “올해 연간 취업자 수는 당초 예상했던 26만명을 밑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수정 전망치에서 취업자 수는 하향 조정될 전망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0월 전망 당시 연간 34만명으로 내다봤던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을 올해 1월 30만명, 4월 26만명으로 거듭 큰 폭으로 낮춘 바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에 따른 국내 외국인 투자금 유출 가능성에 대해선 이 총재는 “단기간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전날 한국 국가신용등급(Aa2)을 유지한 점을 언급하며 “무디스의 등급 유지 근거 중 하나가 우리 경제가 대외충격에 대한 높은 복원력을 갖췄다는 점”이라고도 했다. 다만 그는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고 무역분쟁이 확대되면 일부 취약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좀 더 확산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유입세였던 국내 외국인 자금이 유출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한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부채 가구가 대거 부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이 총재는 “우리(한은)는 가계부채보다도 성장과 물가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다”며 가계부채 문제가 금리 인상 여부 결정에 있어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채 가구 부실화가 저소득층에서 먼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금리 인상은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에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통화정책은 근본적으로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안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운용하는 정책”이라며 “통화정책을 소득분배 정책과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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