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1시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행정관 앞. 무사히 학위를 땄음을 증명하는 ‘학위수여증명서’에 상중(喪中)에 있음을 나타내는 검은 띠가 둘러졌다. 주인은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졸업생과 재학생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학교 정문부터 행정관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서울여대가 ‘2019년부터 특수치료전문대학원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2018학년 신입생들이 졸업하는 2028년까지만 대학원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2001년 개원한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은 표현예술치료학과와 심리치료학과로 구성, 심리치료 관련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전문대학원(학기당 정원 46명)이다. 최근까지도 2018학년 2학기 신입생 모집을 마치는 등 정상 운영돼 왔다.
갈등은 지난달 10일 대학 본부가 대학원 측에 단계적 폐지 취지의 공문을 내려 보내고, 대학원이 이러한 방침을 이달 15일 재학생에게 메일로 공지하면서 불거졌다. 폐지 소식을 접한 재학생과 졸업생은 17일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폐지 논의 백지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발족하고 폐지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비대위는 성명에서 ‘전문적 심리치료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타 대학은 오히려 관련 학과 및 유사 전공 대학원의 설립과 유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반해 국내 유일의 특수치료 전문대학원인 서울여대는 오히려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라면서 ‘특히 학교 주체인 학생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인 논의를 진행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최근까지도 정상 운영돼 온 대학원을 폐지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공분했다. 미술심리치료학과 18학번 김가연(24)씨는 “관련 전공을 공부할 수 있는 곳 중 가장 알아주는 곳이라고 들어 부푼 꿈을 안고 입학했는데 마치 사기 당한 기분”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무용ㆍ동작심리치료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동심(45)씨는 “여성단체에서 상담활동을 해오던 중, 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예술치료가 효과적이란 얘기를 듣고 유일하게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진학하게 됐는데, 한 학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학과 폐지 통보는 청천벽력”이라고 말했다.
학교 당국은 재정 악화로 인해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여대 기획처 경영기획팀은 19일 ‘특수치료전문대학원 폐지 관련 사유 및 진행과정’이라는 제목의 서면을 통해 ‘전문대학원 운영이 등록금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으나, 최근 10년간 사립대 등록금 동결 여파로 인해 대학 전체가 적자 구조’라며 ‘전문대학원은 실무와 이론 교육을 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원도 적어 운영에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전혜정 총장을 비롯해 교무처장, 기획처장, 대학원장, 사무청장 등은 18일 대학원 전임교수 4명 학생대표 3명과 함께 면담을 진행하고 “재정 부담 때문에 대학원 폐지를 논의했으며 향후 학생들 의견도 수렴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폐지 계획을 철회하라는 비대위 요구에는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여대는 지난해에도 학사구조 개편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평가 하위 15% 내외 학부와 학과를 통폐합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가 행정관 점거 시위 등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