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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모바일 시대 가문의 성쇠

입력
2018.06.19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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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 평판 위력 확인해 준 재벌 갑질  가진 자의 기득권 유지 전략 변해야  자녀의 반듯한 품성 육성이 안전장치 

한 재벌 총수 일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온갖 갑질, 횡포와 비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결과다. 가진 자에 대한 기대를 진즉에 접었던 사람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이 실시되고 10개 정부 기관이 수사나 조사에 나선 건 험악한 국민 정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건 해당 재벌가 3세의 폭언과 갑질이었다. 도를 넘은 막말과 고성이 SNS를 타면서 국민적 분노의 뇌관에 불을 붙였다. 성격 장애를 의심케 하는 행태가 잘못된 가정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가족력에 기인한 건지 자못 궁금하다. 어쨌든 내부 직원들까지 등을 돌리는 바람에 총수 일가의 경영 퇴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사태 전개를 지켜보며 불현듯 30년 전 대학원생 시절에 읽었던 논문 한 편이 떠올랐다. 시카고학파의 거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 교수가 1986년에 발표한 ‘인적 자본과 가문의 성쇠’라는 논문이다. 30년 전에 읽은 논문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 강렬하게 꽂혔던 내용이 있다는 얘기다. 베커 교수의 논문이 딱 그랬다. ‘삼대 거지 없고 삼대 부자 없다’는 속언이 서양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서구 선진국에서도 가난한 집안이건 부자 집안이건 삼대가 지나면 대부분 평범한 중간층으로 회귀한다. 가난한 집엔 의무교육 확대와 산아 제한이 계층상승 사다리를 제공한다. 자녀가 좀 더 나은 교육을 받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부자가 삼대 가기 어려운 건 자녀를 많이 두면서 각각의 자녀에게 물려주는 유산이 줄고 교육에도 다소 소홀해지기 쉬워서다. 배우자를 고르면서 세속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당장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감행하는 것도 부자 가문의 쇠락에 일조한다.

우리 사회에선 부자들이 교육을 기득권 유지의 안전장치로 활용한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지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부자 집안이 교육을 소홀히 여겨 중간층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너나없이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에 경제적 여유가 다자녀를 유도할 개연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유족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취향이 선대와 달라지는 현상은 부자 집안의 쇠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선대가 가졌던 경제적 성공을 향한 간절함은 점차 약해질 공산이 크다. 대개 그 간절함이 사라진 자리를 유한계급 취향이 채우곤 한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나 사업에서 샛길로 빠지고 싶은 유혹에 굴복해 재산을 크게 축내기 십상이다.

이번에 사면초가에 빠진 재벌 총수 일가는 모바일과 SNS의 가공할 위력에 모골이 송연해졌을 것이다.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갑질이 모바일과 SNS를 통해 온 국민에게 공유되면서 속수무책의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의 전비(前非)를 수집하는 비밀 채팅방에는 갖가지 의혹이 봇물처럼 제보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평판의 확산이 누군가에게 한순간에 망외의 대박을 안기기도 하지만 졸지에 횡액을 만나게도 하는 세상에 살게 됐다. 따라서 가진 자의 기득권 유지 전략에도 상응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녀가 지닌 번듯한 대학 간판보다는 반듯한 품성이 무엇보다 단단하고 믿을 만한 안전장치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 손에 들린 수많은 모바일이 시놉티콘 체제를 구축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된다면 무척 불편하고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가진 자의 역겨운 갑질이 사라진, 좀 더 투명하고 살 만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치러야 할 비용이라면 다소간의 불편함이나 찜찜함은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법 잘 지키며 배려하고 베푸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야 특별히 괘념할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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