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력을 꽁꽁 숨기며 경기 직전까지 보안을 유지했던 신태용(49) 감독의 승부수는 결국 통하지 않았다.
한국은 18일(한국시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웨덴과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1차전에서 0-1로 무릎을 꿇었다.
이날 경기의 성패는 선제 득점이 아니라 먼저 실점하지 않는 것에 달려있었다. 한국은 몇 차례 위기 속에서도 전반과 후반 초반까지 잘 버텼지만 후반 17분 김민우(상주상무)의 반칙으로 허용한 페널티킥을 상대가 성공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신 감독은 김신욱(전북)을 최전방에 배치한 깜짝 4(수비)-3(미드필더)-3(공격) 전술을 들고 나왔다.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좌우에서 김신욱을 보좌하고 이재성(전북)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중원을 꾸렸다.
스리톱을 구성해 상대 두 명의 상대 중앙 수비보다 수적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좌우 날개인 손흥민과 황희찬이 전방에서부터 압박해 상대 양쪽 풀백이 자유롭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197.5cm의 김신욱이 상대 장신 수비수들과 적극적으로 공중 경합을 하면서 떨어뜨려 주는 공을 손흥민과 황희찬이 해결하겠다는 계산도 서 있었다.
수비는 포백이면 스웨덴 공격수 두 명과 같은 숫자인 만큼 기성용이 수비 라인 바로 위에서 상대를 1차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론적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문제는 신 감독이 지난 해 7월, 부임 후 그 동안 공식 경기에서 이 포메이션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단 한 번, 지난 11일 오스트리아에서 치렀던 세네갈과 비공개 평가전에서 이 포메이션을 가다듬었다.
후반 초반까지는 한국에 승산이 있었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경기 직전 “급한 쪽은 (랭킹이 높은) 스웨덴이다. 우리가 실점을 안 하면 스웨덴은 (공격) 라인을 더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그 틈을 노려야 한다”고 전망했다. 스웨덴은 생각보다 빨리 공격적으로 나왔다. 전반 막바지부터는 초초한 듯 종종 짜증스런 표정도 지었다. 후반 초반도 비슷했다. 한국의 시나리오대로 흐르는 듯 했지만 페널티킥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선제골을 내준 뒤 한국은 동점을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마음만 앞섰다. 역습 상황에서 올라가는 크로스는 부정확했고 ‘에이스’ 손흥민도 잘 보이지 않았다. 종료 직전 황희찬이 날린 회심의 헤딩 슈팅이 살짝 빗나간 게 그나마 아쉬운 장면이었다. 한국은 이날 5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골문으로 향한 유효슈팅은 ‘0’개일 정도로 무력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전사들은 모두 주저앉았고 신 감독은 허망한 듯 그라운드만 응시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미 승부는 끝났다.
박주호(울산)가 전반에 어이 없이 부상을 당한 것도 아쉽다. 장현수(FC도쿄)의 부정확한 롱 패스를 무리하게 받으려던 박주호는 허벅지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갔고 김민우가 대신 들어갔다. 그 때부터 한국은 공수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경기 뒤 신 감독은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다. 팬들에게 보답 못해 죄송하다. 멕시코전을 잘 준비 하겠다”고 밝혔다. 깜짝 전술에 대해 그는 “우리가 세트피스 등에서 불리하다 보니 그렇게 준비했다. 후반에 우리가 높이에 적응하게 되면 황희찬을 투 톱으로 올리려고 준비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됐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1차전에서 독일을 1-0으로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킨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다. 멕시코와 2차전은 24일 0시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펼쳐진다. 멕시코와 경기하기도 벅찬데 한국은 찜찜한 징크스와도 싸워야 한다. 한국은 이번 대회 전까지 9차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4무5패로 2차전에서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혹시나’ 기대를 모았던 팬들은 ‘역시나 3전 전패가 현실이 될 것’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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