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책 만들어 파는 거라면 각 출판사들이 알아서 하는 게 제일 좋아요. 굳이 세 출판사가 함께 책을 만든다면, ‘장사’를 넘어선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부분을 ‘작가론’이라 하고 싶어요.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라는 작가, 그리고 그 시대까지 함께 보여주자는 겁니다.”
18일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의 설명이다. 마음산책과 은행나무, 북스피어 세 출판사가 또 한번 ‘작당’을 했다. 제목과 작가를 밝히지 않은 채 독자가 포장된 책을 사게 한 뒤 나중에 깜짝 쇼처럼 공개토록 한 지난해 ‘개봉 열독 X’에 이어 이번엔 ‘웬일이니! 피츠제럴드’ 기획을 함께 선보였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미국 역사상 첫손으로 꼽히는 소설가다.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 이외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세 출판사는 피츠제럴드의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3편을 골랐다.
은행나무는 피츠제럴드의 초기 소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택했다. 조현병으로 죽은 아내와의 결혼 생활, 1920년대 불안한 미국 시대 상황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마음산책은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가 피츠제럴드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디어 개츠비’를 골랐다. 퍼킨스는 피츠제럴드 뿐 아니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울프 등 당대 최고 작가들을 발굴해낸 명 편집자다. 정 대표는 “맥스웰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지니어스’를 본 뒤 이 책을 꼭 내고 싶었다”면서 “그냥 편지가 아니라 ‘20세기 초 영문학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작가와 출판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말했다. 북스피어는 1920년대 재즈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 ‘재즈 시대의 메아리’를 골랐다. 3권 모두 국내 초역이다.
3권이 하나의 세트임을 드러내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회사 데일리 라이크에 디자인을 맡겼다. 그 덕에 ‘디어 개츠비’에는 양, ‘재즈시대의 메아리’에는 고양이,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에는 여우가 표지를 장식한다. 3권을 함께 세워두면 글자와 그림이 한 권인 양 맞춰지도록 했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편지, 에세이에다 디자인까지 맞췄으니 두루 구색을 갖췄다 싶은데 여기다 한 권을 더 추가 했다. 1920년대라는 시대 배경과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삶을 다룬 ‘웬일이니! 피츠제럴드’ 특별본이다. 이 특별본은 3권을 다 구매하는 독자들에게만 제공한다. 별도 판매는 안 한다. 피츠제럴드라는 작가를 온전히 소개하는 게 목표라서다. 초판은 3,000질, 모두 9,000부를 인쇄했다. 초판을 모두 소화해내는 게 1차 목표다. 지난해 ‘개봉열독 X’의 경우 6주 만에 7,000질이 나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 출판사가 뭉쳤으니, 내년에도 또 뭔가를 도모하지 않을까. “지난해와 올해는 이벤트 같았다면, 내년에는 기획성으로 접근해보고 싶어요. 원고 자체를 아예 세 출판사에 맞춰 발주해보는 건 어떠냐, 같은 아이디어들이 벌써 나오고 있어요.” 가장 든든한 건 역시 직원들이다. “지난해 ‘개봉열독 X’는 사장들이 뛰어다녔고요, 올해엔 지난해 경험 때문인지 편집자들끼리 알아서 하더라고요. 이런 근육이 자꾸 붙으면 또 다른 접근법이 나오지 않을 까요.” 이게 뭐라고 싶으면서도 이런 일을 계속 벌이는 이유는 하나다. “책을 접하는 이들에게 책과의 만남을 좀 더 매력적으로 연출하고 싶어서”(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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