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월드컵 개최를 맞아 국제 인권단체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경기장 인근에 마련했던 시민 공간이 강제 폐쇄됐다. 월드컵을 앞두고 ‘반차별’을 약속해 온 러시아 당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다시 쏟아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국제 비영리단체 ‘인종차별에 맞서는 유럽 축구(FARE)’가 월드컵 개막일인 14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관객들을 위한 ‘다양성의 집’을 개관하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폐쇄 조치로 계획이 무산됐다고 16일 보도했다. FARE에 따르면 월드컵 경기를 찾은 외국인과 여성, 성소수자(LGBT)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안전 공간을 만들고 축구계 소수자들의 성취 등을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2곳에 이 같은 임시 센터를 마련했으나, 개관 하루 전인 13일 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간 임대가 돌연 취소됐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활동가는 “장소를 임대해 준 기업 측은 밤 중에 아무 설명 없이 전기를 차단하고 상당히 무례한 톤으로 우리를 내쫓았다”고 호소했다.
주최 측은 다양성의 집에 위법 소지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피아라 포와르 FARE 사무국장은 “월드컵을 앞두고 인종주의적 구호 등 차별 사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축구계의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공간”이라며 “선동 행위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활동 내용도 없다”고 설명했다. 14일 정상 개관한 모스크바 다양성의 집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이 공식 방문했다. FARE는 유럽 40여개국 출신의 150개 인권단체 및 개인이 모인 비영리 네트워크로 유럽축구연맹(UEFA)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 조치에 러시아 당국이 관여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인권 운동에 대한 제재가 잦은 러시아에서도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우 보수적인 편이어서 “정치적 공격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FARE 측은 밝혔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