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거래 의혹’ 등과 관련해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대신 기존 고발 건에 대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공은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사법부와 전직 대법원장, 대법관 등을 상대로 한 사상 초유의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도 적지 않아 ‘성역 없는 수사’가 제대로, 철저히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15일 검찰에 따르면 최근까지 사법부 행정권 남용 관련 고발장을 접수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조만간 수사를 전담할 부서를 정할 계획이다. 올 1월 참여연대 등이 박근혜 정부 시절 재직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불법사찰 혐의로 고발한 사건 등 총 17건의 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된 상태다. 검찰은 고발 사건들을 서울중앙지검 2차장 산하에 있는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에 배당한 바 있지만 이 부서가 ‘삼성 노조 파괴 공작’사건에 주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3차장 산하 수사팀에 다시 배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검찰 수사의 수위다. 검찰 내부에선 원칙에 따른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벌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비록 김 대법원장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자료를 제공하고 수사에 필요한 협조를 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상시적으로 법원 허가를 받아 수사를 벌여야 하는 법ㆍ검 관계가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연 전례 없는 사법부 수사가 일체의 고려나 성역 없이 이루어지겠느냐는 데 회의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및 구속 영장을 법원에 청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라 양측의 갈등이 조성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의 키를 쥐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농단 사건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두 지휘해 온 만큼 이번 사건도 원칙에 따른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찰청이 수사 방향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서울중앙지검 해당 부서 의지”라고 설명했다.
수사가 시작되면 일단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 박병대 전 대법관(전 행정처장), 임 전 행정처 차장 등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논란이 된 문건들이 법원행정처장을 거쳐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는지가 밝혀져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재판 거래’ 의혹의 경우 수사선상에 전ㆍ현직 대법관과 박근혜 정부 시절 관계자들이 오를 수 있다. 관련 문건에는 ‘이석기, 원세훈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등 대법원 판결이 담겨 있어, 당시 숙원사업(상고법원)을 따내려 청와대와 시국 사건 판결을 거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관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사찰이 조직적ㆍ체계적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판사들의 자료나 평가를 수집한 건 도의적으로는 비판 받을 수 있지만 인사로 불이익을 준 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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