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가정보원장들이 대통령에게 지원한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해 뇌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성창호)는 15일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과 관련해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남재준(74)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이병기(71)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6월, 이병호(78)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6월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에게는 징역 3년이 내려졌고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세 사람은 재임 기간 중 특활비 일부를 빼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총 36억5,000만원을 상납한 혐의(특가법상 국고손실·뇌물공여)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국정원장 특활비는 국내외 정보수집 등에 쓰도록 그 용도나 목적이 정해져 있으나 그런 돈을 대통령에게 매달 지급한 것은 사업목적을 벗어나 위법하다”며 예산을 잘못 사용해 국고를 손실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속 하부기관 입장에서는 대통령 요구나 지시로 청와대에 예산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대통령의 직무 관련 대가로 지급한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자금을 전달하면 어느 정도 편의를 받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런 자료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국정원장 재임 중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사례들이 있다”며 “국정원장 임명에 대한 대가로 사례나 보답을 할 만한 동기도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병기 전 원장이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전달한 특수활동비 1억원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게 건넨 특활비는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국정원 예산 배정이나 업무편의 등을 바라고 돈이 전달됐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은 뇌물 혐의가 적용된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 가운데 처음 나온 법원 결정이다. 특히 같은 재판부가 맡고 있는 박 전 대통령 특활비 관련 뇌물수수 혐의 재판 역시 무죄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지난 14일 결심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2년과 벌금 80억원을 구형했다. 원세훈·김성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7억여원의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의 경우도 유사 사건이어서 이날 판결 결과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인사·감독권자인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국정원 돈을 줬기에 직무 관련성은 판례상 당연히 인정된다”며 “대통령에게 개인 돈을 주면 뇌물이 되고, 나랏돈을 횡령해 주면 뇌물이 아니라는 비합리적인 논리에 이르게 되는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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