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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안 낳았으면 한국 축구 어쩔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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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안 낳았으면 한국 축구 어쩔 뻔 했어요

입력
2018.06.16 10:00
수정
2018.06.16 11:57
9면
0 0
[편집자주] 신태용호는 허약한 수비조직력 때문에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3전 전패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지만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 야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원과 공격진에는 역대 한국 축구에서 나오기 힘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출신 중앙 미드필더는 유럽 빅 리그에서 통하기 힘들 거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깬 ‘캡틴’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손흥민(26ㆍ토트넘)이 대표적이다.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과 이승우(20ㆍ베로나)는 ‘미완의 대기’지만 도전적인 돌파와 빠른 드리블 등 결이 다른 플레이로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 K리그를 호령하는 이재성(26ㆍ전북)은 지금 당장 유럽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다. 은사와 가족, 지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들 5인방의 성장기와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너, 어느="" 별에서="" 왔니=""> 를 연재한다. #1 활동량은 박지성, 볼터치는 이청용 닮은 꼴 측면, 중앙 MF 멀티플레이어 해외 덜 알려져 비밀병기 구상 #2 학창시절 왜소해 대표 못 뽑혀 감독들 “반듯한 인성” 성공 장담 프로 첫해 주전, 작년 리그 MVP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재성이 지난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득점한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재성이 지난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득점한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재성(26ㆍ전북)은 박지성(37)과 이청용(30ㆍ크리스털 팰리스)을 합쳐놓은 것 같다는 찬사를 듣는 선수다.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활동량은 박지성, 체격(180cm 70kg)은 호리호리해도 뛰어난 볼 터치로 수비 사이를 빠져 나가는 플레이는 이청용과 꼭 닮았다.

이재성은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축구 일기를 써왔다. 고려대 시절 일기장에 이런 글이 있다.

‘존경하는 선수 – 박지성. 허약한 신체조건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나를 버리는 희생정신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박지성 선수처럼 해야 한다.’

이재성은 러시아월드컵에서 17번을 달고 뛴다. 이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 이청용이 국가대표에서 애용했던 번호다.

이재성 일기 및 사진
이재성 일기 및 사진

그는 측면과 중앙 미드필더를 다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신태용(49) 국가대표 감독은 K리그에서 뛰고 있어 스웨덴이나 멕시코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재성을 ‘비밀병기’로 활용할 생각이다.

고려대 3학년을 마치고 2013년 말 전북에 입단한 그는 국가대표 선수가 즐비해 ‘신인의 무덤’이라 불리는 팀에서 곧바로 주전을 꿰찼다. 이듬해 ‘2년차 징크스’를 보기 좋게 잠재우며 영플레이어상(3년 차 이내 선수에게 주는 신인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K리그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쥐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재성의 꿈은 축구 선수였다. 이재성 제공
어렸을 때부터 이재성의 꿈은 축구 선수였다. 이재성 제공
이재성의 가족 사랑은 남다르다. 이재성 제공
이재성의 가족 사랑은 남다르다. 이재성 제공

K리그가 낳은 이런 보물 같은 선수를 우리는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이재성은 위로 7살 많은(재혁), 5살 많은(재권) 두 형이 있다. 둘째 형인 이재권도 축구선수로 지금은 K리그2(2부)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고 있다. 이재성은 형의 진로를 그대로 밟아 울산 옥동초-학성중고-고려대를 다녔을 정도로 형제 간 우애가 깊다.

이재성 어머니 최수열씨는 “둘째가 딸이었으면 아마 재성이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재성이를 임신한 뒤 병원에 가서 ‘낳아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걱정 말고 낳으라’길래 딸인 줄 알고 낳은 것”이라고 웃었다. 아버지 이광영씨도 “(딸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너무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막내”라고 미소 지었다.

이재성(왼쪽)의 초등학교 시절 은사 이승재 옥동초 감독. 이승재 감독 제공
이재성(왼쪽)의 초등학교 시절 은사 이승재 옥동초 감독. 이승재 감독 제공

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 축구를 시작한 이재성은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승재 옥동초 감독은 “인지 능력, 상황 판단, 밸런스, 균형감각을 타고 났다”고 했다. 이재성은 학창시절부터 체격이 왜소한 편이라 유소년, 청소년 대표에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 그러나 이 감독은 “다른 감독들도 재성이가 지금 당장은 빛을 못 봐도 조만간 대성할 거라고 얘기했다. 유명 중ㆍ고교 스카우트들도 재성이한테 관심이 많았는데 형이 다닌 학교만 따라가겠다고 하니 다들 허탈했을 것”이라고 웃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유망주를 스카우트하기에 앞서 기량보다 성장 환경, 인성, 품행을 더 중시한다. 인성이 선수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재성은 정말 반듯해 ‘FM(야전교범)’ 같은 선수다. 어머니 최씨는 “대학을 나올 때 식당 아주머니, 경비원 아저씨 등 일하시는 분들께 하나하나 손 편지를 쓰고 나온 아들”이라고 흐뭇해했다. 아버지 이씨도 “경기 전날이면 축구화부터 용품까지 완벽하게 세팅을 끝내놓고 잠에 든다. 축구하며 부모 속 한 번도 썩인 적 없다”고 했다. 이 감독은 “프로 선수가 된 뒤에도 울산에 올 일 있으면 모교에 들러 후배들 밥 사주고 조언 해주고 용품도 지원한다. 운동장 안팎에서 이런 성품을 갖춘 선수는 드물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슈팅 훈련하는 이재성. 레오강=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슈팅 훈련하는 이재성. 레오강=연합뉴스
이재성(왼쪽)이 손흥민과 함께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레오강=연합뉴스
이재성(왼쪽)이 손흥민과 함께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레오강=연합뉴스

이재성이 지난해부터 K리그와 국가대표를 오가며 맹활약을 펼치자 중국, 중동 클럽에서 거액의 연봉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유럽 무대에서 뛰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아버지 이씨는 “주변 사람들은 그 연봉이면 삼대가 떵떵거리는데 왜 안 가냐고 한다. 하지만 재성이는 유럽 아니면 안 간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전했다.

이재성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고 자신의 유럽 진출에 발판을 놓겠다는 두 가지 꿈을 꾼다. 그는 “월드컵을 통해 품어왔던 유럽 꿈을 이루고 싶다”며 “(손)흥민이처럼 꼭 유명한 선수는 아니어도 박지성 선배처럼 헌신하고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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