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이라고 불러야 할까. ‘느낌의 0도’라는 제목, 연분홍 표지만 보면 요즘 유행인 감성 에세이 같다. 저자는 박혜영(54)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다. 그는 생태잡지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이다. 책장을 넘기면 윌리엄 블레이크, 로버트 프로스트, 알렉산더 포프 같은 영미 시인들의 시가 드문드문 눈에 든다. 8개 챕터에서 각각 ‘생태작가’ 8명을 다룬다. 그리하여 책은 영문학자가 문학과 생태로 풀어 쓴 작가론이다. 작가의 문학적 성취는 저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작가들의 입을 빌려 문명을 비판한다. 인간의 탐욕 탓에 생태의 반대말이 된 문명.
인간은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임을 잊고 산다. 그걸 개탄한 것이 저자가 주목한 작가 8명의 공통점이다. 자연에서 눈을 돌린 인간은 돈과 힘에 중독됐다. 많은 것을 좇을수록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레이첼 카슨은 저서 ‘침묵의 봄’에서 화학물질 맹신이 ‘건강한 봄’을 빼앗았다고 썼다. 카슨에게 살충제 문제는 문명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문명이라면 어떻게 다른 생명체에게 그토록 잔인무도한 전쟁을 걸 수 있나.”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암세포처럼 혼자서 무한 증식하는 고독한 돈”에 휘둘려 ‘그 많던 시간’을 잃어버린 현대인을 비튼 우화다. 존 버거는 스피노자를 존경했다. 스피노자의 생업은 안경 렌즈를 닦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버거는 ‘세상을 명징하게 보는 렌즈(눈)’의 회복을 강조했다.
아주 널리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 사상가의 생각을 요약본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게 책의 미덕이다.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노동의 즐거움’을 잃은 인간을 꼬집었다. “임금 노예란 삶은 한편에 제쳐 두고 그저 일만 하는 것, 그리하여 거기에 한 줌 똥덩어리로 서 있는 것이다.” 슈마허가 인용한 영국 작가 D. H. 로렌스의 글이다. 책에는 이처럼 ‘작가가 인용한 작가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미국 작가 웬델 베리는 ‘삶의 터전’을 앗아간 산업 문명을 ‘노숙 문명’으로 규정했다. 뜨내기 현대인들에게 남은 건 영원히 달래지지 않을 불안 뿐. 베리는 스스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농부가 됐다.
느낌의 0도 박혜영 지음 돌베개 발행∙232쪽∙1만4,000원팔레스타인 민족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정의로운 질서’를 잃은 인간의 미래가 ‘여성적인 것들’에 있다고 봤다. “힘과 권력, 키와 자살 테러가 아니라 모든 여성적인 것들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존재들과 나의 운명이 이어져 있음을, 인간이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임을 꿰뚫어 보는 ‘겸허한 상상력’을 그리워했다.
저자는 책에서 치밀한 논리를 세우기보다 군데군데 빈 공간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제목의 ‘0도’는 “무감각에서 깨어나 눈 뜨는 해빙의 온도”라고 한다. 그런 두루뭉술함에 대한 독자의 평가가 갈릴 것 같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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