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을 대표했던 자유한국당이 6ㆍ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한국당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단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총사퇴로 지도부 공백상태가 된 한국당은 새 리더십 구축과 보수 진영 재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도 한국당발(發) 정계개편 바람이 불어 닥칠 전망이다.
전날 사퇴 가능성을 시사했던 홍 대표는 14일 “오늘 부로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며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이어 홍 대표는 “부디 한마음으로 단합해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취재진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뒤 회견장을 떠났다.
이날 홍 대표와 함께 6명의 최고위원도 2선으로 후퇴했다. 주광덕 경기도당위원장ㆍ김한표 경남도당위원장ㆍ정갑윤 울산시당위원장 등 지방선거 패배 지역의 현장 책임자들도 줄줄이 사퇴했다. 당 소속 의원들의 반성문도 이어졌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의 심재철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남은 것은 통렬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 혁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4선의 정우택 의원은 “보수는 죽었다. 죄스럽고 참담한 심경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돌이켜보고 가슴에 새겨 실천하겠다”고 했다.
지도부 총사퇴에 따라 한국당은 당분간 김성태 원내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당을 수습하고 보수 재건과 변화를 이끌 여러 가지 준비를 지금부터 착실히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은 15일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조기 전당대회 여부 등을 논의한다.
한국당 안팎에선 차기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이미 시작된 분위기다. 새로 선출될 당 대표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쥔다는 점에서 권한이 막강하다. 작게는 몰락한 한국당의 쇄신, 크게는 야권 통합과 보수 재건이라는 무거운 책임도 지게 된다. 이런 막중한 역할을 감안하면 그만한 정치적 연륜을 가진 인사가 차기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당 안팎에선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해 김 원내대표, 당내 중진인 정우택 정진석 나경원 의원 등이 거론된다. 황교안 전 총리, 이완구 전 총리의 도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오랜 기간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 대표로 바로 복귀해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새 지도부에게 주어질 첫 과제는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이 될 전망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일방적 승리로 야권 통합 추진의 명분이 생겼다고 보는 분위기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야권 분열이 여당 압승의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모두 반성이 필요하다”며 “바른미래당 소속 호남 의원들만 통 큰 결단을 내려준다면 지역주의를 탈피한 혁신정당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통합 논의가 한국당의 해체와 맞물려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한국당의 한 영남 의원은 “지금의 한국당 자원만으로 쇄신을 한다고 한들 어떤 유권자가 신뢰를 갖겠느냐”라며 “유승민 공동대표를 비롯한 바른미래당 보수 세력과 헤쳐 모여 보수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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