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 스페인이 격랑에 빠졌다.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둔 코앞에 두고 선장이 바뀌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사령탑 교체의 발단은 훌렌 로페테기(52ㆍ스페인) 감독의 처신 때문이다. 월드컵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로페테기 감독의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차기 사령탑 부임 소식이 13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이에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은 곧바로 스페인 대표팀의 훈련 캠프지인 러시아 크라스노다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페테기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한 사실을 공식 발표 5분 전에 알았다”고 분개하며 경질을 발표했다. 현지 날짜로 15일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1차전(한국시간 16일 오전 3시)을 불과 이틀 앞두고 내린 결정이다. 로페테기 감독의 후임으로는 A매치 89경기를 뛰고 레알 마드리드에 몸 담았던 ‘전설적인 수비수’ 페르난도 이에로(50ㆍ스페인)를 선택했다.
그러나 스페인축구협회의 결정이 적절했는지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세르히오 라모스(32)를 비롯한 몇몇 고참급 선수들은 로페테기 감독과 월드컵까지 함께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협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6년 7월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에게 바통을 이어 받아 스페인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로페테기 감독은 부임 후 20경기에서 14승6무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러시아월드컵 지역 예선도 9승1무(36득점 3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과했다.
19세, 20세, 21세 이하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스페인의 축구 철학을 이어갔고, 현 대표팀의 주축 다비드 데헤아(28), 알바로 모라타(24), 코케(24) 등의 성장도 이끌었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심리학과 교수인 캐리 쿠퍼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결정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전 스페인 국가대표 사비 에르난데스(38)는 “로페테기 감독의 결정은 성급했고, 모두를 놀라게 했다”면서 “협회는 개인 위에 있어야 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비는 또한 “이에로 감독은 준비된 사람”이라며 “스페인은 여전히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덧붙였다.
이에로 감독은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축구협회의 제의를 거절하면 스스로 용서가 안 될 것 같았다”며 “월드컵 우승을 위해 용기를 내서 사령탑의 책임을 맡았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 선수들은 지난 2년 동안 월드컵을 위해 준비해왔고, 그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면서 “아름답고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로 감독은 시간이 부족한 만큼 대표팀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 방침이다. 다만 선수단이 흔들리지 않도록 당부의 말을 건넸다. 그는 “과거에 연연하면 월드컵 무대에서 실수할 수 밖에 없다. 감독이 바뀌었지만 안정을 찾고 미래만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페인의 갑작스러운 사령탑 교체는 포르투갈에 호재다. 포르투갈은 그 동안 A매치에서 스페인에 6승13무16패로 열세를 보였다. 월드컵에선 5차례 맞붙어 1무4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 2016 우승을 통해 더 이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의 ‘원맨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성공적인 세대교체도 이뤄냈다.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은 팀 분위기도 잘 추스르며 월드컵 준비에만 매진했다. AP통신은 “포르투갈도 호날두가 소속 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지에 대한 거취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호날두는 월드컵에 집중한 다음 자신의 계획을 대회 이후 발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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