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총수 일가를 향해 일감 몰아주기의 ‘단골’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 등 4대 업종의 계열사 보유 지분을 정리할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의 대주주 일가는 (그룹 내) 주력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가능한 빨리 매각해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총수일가가 이런 계열사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를 일삼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생존 기반을 잃게 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0대 그룹 경영진과 만나 “총수 일가는 비주력ㆍ비상장 계열사 주식은 보유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한 데 이어 구체적인 업종까지 특정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 4대 업종은 그 동안 일감 몰아주기의 수혜 업종으로 지목돼 왔다. 공정위가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27곳의 내부거래 현황을 조사한 결과, SI 업종의 내부거래 비중은 69.8%에 달했다. 부동산(56.1%)과 전문서비스(광고대행 등ㆍ37.6%)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고 물류(33.7%)는 6번째였다. 특히 주요 대기업 SI 계열사는 ‘총수일가 주식 저가매입→그룹 전산업무 확보→지분가치 증대→승계자금 마련(지분매각) 혹은 핵심회사와 합병’ 등의 경로를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기밀 등 보안문제(SI)나 경영 효율성 증대(물류)를 위해 이들 업종에선 내부거래가 불가피하다고 항변해왔다. 공정거래법 시행령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예외 사유로 ‘효율ㆍ긴급ㆍ보안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재벌마다 총수일가가 지분을 다수 보유한 SI,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회사가 꼭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선진국 기업들도 효율ㆍ긴급ㆍ보안성을 모두 고려하지만 외부 업체와 거래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비주력ㆍ비상장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공정위의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일각에선 법적 근거도 없이 지분 매각을 종용하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날 간담회에서 ‘지분 매각을 요구하려면 먼저 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적 재산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법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지분율(상장사 30%, 비상장사 20%)을 20%로 단일화한다고 해도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재계에 당부를 드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 위원장은 그 동안 지방사무소에 신고가 반복적으로 접수된 업체 36개에 대해선 본부가 직접 거래 시스템 전반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본부로 조사를 이관한 기업은 공정거래ㆍ대리점법의 경우 5년간 5회 이상 법 위반 신고가 접수된 12개 기업, 하도급ㆍ가맹ㆍ대규모유통업법은 5년간 15회 이상 26개 기업”이라며 “(조사대상에 대기업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임기 2년차 계획과 관련,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을(乙)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의 성과를 만드는 데 공정위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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