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앓이’. 몇 해 전 프랑스 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토프 포레가 쓴 책은 이제 중년의 화두가 됐다. 인류 평균 수명이 18세였던 기원전 500년의 성인(聖人) 공자는 “마흔에 이르러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썼지만, 평균수명 81.8세를 맞은 2018년 한국인에게 마흔은 ‘청춘의 끝으로 여기며 우울증을 앓는 제 2의 사춘기’다. 비단 마음뿐이 아니다.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 각종 관절 질환, 위장병, 불면증 등 만성 질환이 시작되며 노화를 몸으로 체감하는 것도 마흔 무렵이다. 떨어지는 체력과 추락하는 감정을 추스릴 방법이 있을까.
여기 마흔앓이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쉰하나에 “인생의 절정을 맞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 강금실의 ‘서른의 당신에게’,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등 베스트셀러를 기획하며 출판계 최초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은 이영미 에디터다. 3년 전 출판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며 ‘인생학교’ 교사로 강의한다. 최근 편집자 인생 25년 만에 처음 쓴 책머리에 자신의 이력을 이렇게 썼다.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 체력.’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영미씨는 “책을 읽은 독자가 ‘나도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출판 편집 25년의 노하우를 담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가늘고 하얀 몸을 좋아하잖아요. 운동하면 자기 몸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달라져요. 저는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 같은 강하고 움직임이 큰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이힐 벗고 출퇴근길에 걷기만 해도 달라져요. 그렇게 삶을 바꿔보라는 메시지를 담은 거죠.”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유전 탓에 30대 중반부터 고혈압 약을 달고 살았던 그는 자신이 ‘저질체력’을 타고 났다고 믿었다. ‘정신노동자가 머리를 써야지 어디 몸을 쓰냐’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때도 있었다. 격변의 시작은 마흔에 접어들면서부터. 영미 씨는 집 앞 수영장을 들락거리고, 달밤에 공터를 달리고,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슈퍼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올빼미족에서 “아침형 근육 노동자”로 변신했다. 이런 경험을 담은 책 ‘마녀체력’(남해의봄날 발행)의 부제는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발간 3주 만에 3쇄 6,000부가 판매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자 나이 마흔은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나이다.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로 부하 직원 챙겨야 하고 성과 내야하고 가정에서 아이가 막 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죠. 한데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체형은 ‘아줌마’로 바뀌어요. ‘여자로서 끝났다’는 심리적 타격이 오는데, 사회에서는 여전히 ‘예쁨’을 요구하죠. 특히 미혼한테는.” 한편으로 ‘평생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때다. 운동하면서 저절로 잡생각을 비우는 ‘멍 때리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나이라 한 번 운동에 재미만 붙이면 꾸준히 할 수 있다.
모태 저질체력의 영미씨가 드라마틱하게 바뀐 계기는 부부 동반으로 떠난 지리산 여행에서다. 약한 체력을 탓하며 아이들과 녹차 밭을 구경하다 밥을 지은 그는 밤늦게서야 환희에 차서 돌아온 지리산 등반 무리를 보며 ‘거대한 자연의 벽 앞에 한없이 초라해진 나를 발견’한다. 집 앞 공터 뛰기에서 시작해 새벽 수영과 철인 3종 경기로 이어진 12년 ‘운동 인생’의 서막이 시작된 순간이다.
작심삼일을 넘긴 비결은 뭘까. 영미씨는 “목표를 세우라”고 말했다. 단 “5㎏을 빼겠다” 같은 ‘결과형 목표’가 아닌 “오늘 25층 아파트를 계단으로 두 번 오르겠다” 같은 의지로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12년 전 그의 목표는 ‘새벽 수영 강습을 6개월 다니는 것’이었다. 목표를 실천하면 보상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하는 모습,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에요. 캘린더에 ‘참 잘했어요’ 스티커 붙인다고 누가 흉보나요. 컬러 운동화를 머리맡에 두거나 운동할 때마다 5,000원씩 저금하는 것도 강추합니다. 운동은 잘하는 것보다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잘 쉬는 요령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이영미씨는 “운동하면 몸의 신호에 민감해지는데, 아플 것 같은 신호가 오면 무조건 쉬어라. 저는 입술이 부풀면 운동 쉬고 많이 잔다. 대신 (운동 쉬는 기간이) 3일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 가정 양립’도 힘든 시대에 운동할 시간은 어떻게 낼까. 영미씨는 “제가 인생학교에서 맡은 과목이 ‘일과 삶의 균형 잡는 법’”이라고 외쳤다. “그 강의의 결론은 ‘균형을 못 잡는다’는 거예요. 일도 잘하고 인생도 즐기는 방법은 없어요, 일이 재미있으면 일에 집중하고, 일이 힘들어 죽겠으면 내 삶을 돌봐야죠. 대신 기대치를 낮추라는 거죠.”
영미씨가 포기한 건 요리와 살림이다. 덮밥처럼 반찬 하나 놓고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을 주로 만들고,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 먹은 밥그릇을 설거지하는 식이다. ‘못 참는 사람이’ 하게 되는 청소는 당연히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고. 이렇게 아낀 시간에 운동을 했다. 그는 “(집안일을 내려놓는데) 가족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운동 후 달라진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허약함이란 아킬레스건을 극복하면서” 예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버킷 리스트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운동처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무조건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분야를 집중 공략한다. 2년 전부터 배드민턴과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달 29일 남편과 함께 스위스 몽블랑 트레킹을 떠난다. “제 주변에 이 책 읽고 운동 시작했다는 분들이 많아요. 자전거 자물쇠 번호 까먹어서 절단기로 잘랐다는 말도 몇 번 들었죠. 그게 기뻐요. ‘저 조그만 영미도 했는데 왜 못하겠나’ 이런 변화에 제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