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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내친구] 25년 한국 경제 담당 ‘한 우물’ 사투리까지 할 정도 애정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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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내친구] 25년 한국 경제 담당 ‘한 우물’ 사투리까지 할 정도 애정 깊어

입력
2018.06.22 20:00
수정
2018.06.24 21: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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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랜달존스 OECD 한국팀장

랜달 존스(가운데) 박사 부부와 윤종원(왼쪽) 대사. 주OECD 한국대표부 제공
랜달 존스(가운데) 박사 부부와 윤종원(왼쪽) 대사. 주OECD 한국대표부 제공

로버트 레드퍼드를 연상시키는 외모, 부드러운 미소와 예의바른 태도, 숙성된 경제전문가의 혜안과 명쾌한 분석, 거기서 예상을 깨고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의 친근함. 거시정책과 구조개혁을 맡고 있던 2000년대 초 처음 만난 랜달 존스(Randall Jonesㆍ이하 랜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팀장의 인상이 그랬다. 그 때 시작된 랜디와의 인연은 OECD대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필자가 경제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고민할 때 자문하곤 하는 핵심 사운딩 보드이다.

현실에 기반한 송곳 같은 분석, 논리정연한 정책 권고는 왜 그가 OECD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한국경제 전문가인지 방증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기구에서 국가 담당은 몇 년마다 바뀌는 게 일반적이지만 랜디는 한국경제를 25년이나 맡아 왔다. 겉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지표 뒤에 숨어 있는 한국경제의 민낯과 속사정을 잘 안다.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속에서도 경쟁에 뒤처지는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이해하며 정책을 안 하는지 못하는지 이유와 줄거리를 빤히 꿰고 있다.

랜디가 한국경제 전문가로 손꼽히는 건 경제에 정통해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다. 그의 한국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랜디는 19세 되던 해에 낯선 한국으로 선교사 활동을 배정받는다. 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한창이던 1974년, 부산 서면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랜디는 2년간 부산, 대구, 광주, 서울을 두루 다니며 한국 문화와 전통,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익혔다. 달려드는 개에게 존대법이 서툴러서 “저리 가십시오”라고 해서 주위 사람이 웃었다는 일화도 소개하곤 한다. 후진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1970년대 대한민국 모습을 속속들이 보면서 경제발전에 대한 우리 열망을 읽었을 것이다.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하숙집 아줌마 추억, 수도사정이 안 좋아 자주 들렀던 대중목욕탕의 익숙함, 짜장면에 대한 그리움, 낯선 외국인에게도 식사를 대접하던 우리의 정에 대한 이해는 그를 한국인만큼 한국을 잘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은 자녀들에게서도 엿보인다. 매년 가족행사로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7명의 자녀가 모인다는데 작년에 장녀 캔디스의 둘째 딸 출산 축하행사로 한국 여행을 함께 다녔을 정도이다.

한국 선교활동을 마친 랜디는 1984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아시아 경제 전공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향인 워싱턴DC에서 정부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1989년부터 OECD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OECD 가입 의사를 표명한 직후부터 한국 담당관으로 일했다. 1994년에 OECD가입의 기초가 되는 한국경제보고서(Economic Survey)를 최초로 작성했으며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회원국 동료 평가를 무난히 마치고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한국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냉철한 분석과 국제적 안목을 토대로 제시된 랜디의 정책 메시지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그는 1997년 위기 극복과정에서 언론들이 금과옥조로 여겼던 소위 ‘OECD 가라사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정책 권고는 시장 원리에 기반한 구조개혁에 초점이 놓였으며 금융시스템과 기업지배구조 개혁 작업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2016년 OECD가입 20주년을 맞아 우리 대표부가 개최한 ‘한국 경제의 미래 도전과 전략’ 세미나에서는 불균형적인 경제 개발이 야기한 소득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경제구조에 내재하는 생산성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최근에는 포용적 성장을 위해 사회안전망 강화, 중소기업과 서비스 생산성 제고, 노동시장 유연 안정화, 인구 고령화 대응과 중장기 재정건전성 확보에 중점을 둘 것을 권고한다.

사실 랜디는 OECD에서 승진이 용이한 관리직 대신 전문직에 머무르며 한국과 일본 경제라는 한 우물을 파왔다. 한국ㆍ슬로바키아 담당이던 2002년에 일본ㆍ아일랜드를 맡으라는 내부 요구가 있었지만 한국을 계속 맡는 조건으로 일본을 받겠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랜디가 한국 경제를 담당한 지난 25년 동안 1~2년에 한 번 나오는 한국 경제보고서를 15번이나 발간했는데 그의 보고서는 OECD 경제검토회의에 상정된 여느 보고서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일에는 16번째 한국경제보고서가 발표됐는데, 2020년 초 정년을 맞는 그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한국 보고서일지도 모른다. 25년에 걸친 그의 정책 권고는 우리 경제사회 전 분야의 구조개혁과 선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무실에는 한국 정부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데 그들의 정책 역량을 키우는 데도 일조해 왔다.

그의 오랜 기여를 감안하여 우리 대표부는 랜달 박사에 대한 서훈 필요성을 상신했고 얼마 전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서 수교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25년간 한국 경제를 담당하며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한 그가 이제야 훈장을 받는 것이 어찌 보면 늦은 감도 있지만 한국의 친구에게 쌓여온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더는 느낌이다.

한국의 정을 이해하고 서울 출장 올 때 조그만 과자봉지라도 건네는 오랜 친구 랜디! 앞으로 OECD를 떠나더라도 한국경제에 대한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친구로 계속 남아 있을 것으로 믿는다.

윤종원 駐 오이시디 대한민국대표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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