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 대표로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역학 관계도 관심사다. 당장은 북미 간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데 일등공신인 폼페이오 장관이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쥐겠지만, 향후 합의 이행 과정에서 북한과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경우엔 ‘슈퍼 매파’인 볼턴 보좌관의 역할론이 재부상할 수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에서 각각 굿캅, 배드캅 역할을 맡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력을 극대화했다. 북한과의 협상을 진두 지휘한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두 차례나 방문하면서 당근을 제시해 왔다면, 볼턴 보좌관은 북한에 리비아식 해결을 밀어붙이며 채찍을 휘둘러 왔다. 이에 볼턴 보좌관을 지목한 북한의 강한 반발로 정상회담이 무산위기에 처하면서 볼턴 보좌관이 대북 실무라인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날 확대 정상회담부터 업무오찬, 공동성명 서명식에 나란히 배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임을 재확인했다.
다만 이날 두 사람의 표정은 상반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사전협상의 주역으로서 시종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확대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바로 왼쪽에 앉았고, 공동성명 서명식에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류철을 펴주는 등 가까이서 보좌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북한 측에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을 의식한 탓인지 시종 굳은 표정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부터 물밑에서 한국의 국가정보원,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정보라인 간 채널을 구축,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해 왔다.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지난 석 달 동안 양국을 오가며 무산위기에 처한 세기의 담판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았다. 이날 공동성명에도 후속 협상의 담당자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릴 정도로 폼페이오 장관의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반면 공동성명에는 볼턴 보좌관이 주장해 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표현은 명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부담스러워 하는 그가 회담에 배석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카드로 해석된 만큼 향후 북한의 합의 이행을 압박할 때 그의 역할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숙소에서 회담 장소인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로 향할 때 전용차량에 동승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는 앞으로도 두 사람을 경쟁시켜 대북정책의 최종 결정을 도출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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