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인 스탁턴시 시장에 관한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가난한 집에서 성장해 명문 스탠포드대를 나와 27세 젊은 나이에 시장이 된 흑인 청년 마이클 텁스가 주인공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공약대로 9월부터 2년 동안 100 가구를 골라 월 500달러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재원은 시 예산이 아니라 이를 위해 따로 걷은 후원금이다. 그의 실험이 의미가 있는 것은 시장 자본주의의 맹주인 미국에서 처음 행해지는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이란 직업이나 노동 의지와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기본소득은 복지제도가 발달한 북유럽의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로 알려졌다. 실제 핀란드는 일부 국민을 무작위로 선정해 월 몇 십 만원의 기본소득을 주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실험이 종료됐다고 보도했지만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핀란드 정부 관리는 보도와 달리 여전히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북유럽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요즘 기본소득의 지급 필요성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도 지난달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누구나 안심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 지급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노동의 양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과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등장은 노동 강도와 시간의 단축 뿐 아니라 아예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든다. 세계경제포럼이 2016년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로봇 때문에 2020년까지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일부는 정부가 아무리 실업 대책을 내놓고 일자리를 늘리려 노력해도 해결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그렇다고 기술 발달을 늦출 수도 없다.
노동 시간과 강도, 일자리가 줄면 소득도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능력과 상관없이 취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죽을 만큼 일해도 기본생활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 생긴다.
일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한다고 인간의 존재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기본소득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즉 기본소득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인간의 존재 가치라는 철학적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산업 현장, 특히 AI 전문가들일수록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 예산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국회 동의 등 절차적 문제로 기본소득 지급이 쉽지 않다. 스탁턴 시장의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후원금 모금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구글 등 돈 잘 버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유명 스타트업 육성업체 Y콤비네이터도 오클랜드에서 100 가구를 선정해 월 1,000~2,000 달러의 기본소득을 주는 실험을 하고 있다. 돈 잘 버는 기업들에게 일자리를 늘리라는 것보다 기본소득을 후원하면 직원들의 소득세 감면을 해주는 것이 부의 재분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일 수 있다.
6ㆍ13 지방선거에서도 여러 후보들이 실업 대책으로 일자리 확대 공약을 쏟아냈다. 어느 매체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늘리겠다는 일자리만 합쳐도 실업자보다 많은 256만 개에 이른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다. 이제 우리도 비현실적인 선거 공약을 쏟아낼게 아니라 줄어드는 일자리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거 당선자들이나 집권 세력이 스탁턴시의 실험을 적극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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