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사업가들에 마케팅 등 보급
기초 수준이지만 상당히 진전
북미회담 이후 상황전개 기대”
“북한에도 달라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화폐 개혁 실패를 계기로 내부에서도 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을 겁니다. 완전히 개혁 개방을 결정했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혁신과 경영 노하우에 대한 지식을 알아 둘 필요는 있다고 봤을 겁니다.”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대북 교류단체 ‘조선교류(Choson Exchange)’의 활동에 참여하는 한국 국적 분석가 데이비드 배(29)씨는 북한 내부에서도 자본주의식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교류는 사업체 운영과 혁신 노하우를 배우기 원하는 북한의 ‘신진 사업가’들에게 관련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다. 올해 5월 북한에서 진행한 이들의 교육에는 130여명이 참석했다.
배씨는 “사업이 처음 시작된 2010년쯤만 해도 북한 내부에서 경영과 마케팅 등 개념의 수용을 껄끄러워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진전됐다”고 말했다. 교육에 참여한 대형 상점 운영자는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운영 시간을 조절했고 재고 관리를 디지털화했으며 체인점 운영도 시도했다. 한 커피숍 운영자는 내부 디자인을 바꾸고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 고객을 관리했다. 언뜻 보면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북한 내부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고객을 공략하는 경영과 마케팅 개념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단체를 설립한 제프리 시 대표는 2007년부터 북한과 접촉해 사업 진행을 시도했는데, 실제로 교육 프로그램이 정례화된 것은 2010년부터다. 북한 내 파트너인 ‘조선ㆍ싱가포르친선협회’를 통해 북한 내에서 교육을 원하는 북한인들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교육을 진행한다. 북한에서 교육을 하기도 하고, 싱가포르와 베트남 호찌민 등으로 북한인들을 초청해 3~4개월간 ‘미니MBA’라는 이름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조선교류는 싱가포르 초청 교육 참여자들이 작년 말 기준으로 북한 내에 다수의 ‘스타트업’을 열어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씨는 북한이 싱가포르 기반 단체인 조선교류를 혁신 교육 파트너로 선정한 이유가 싱가포르나 베트남 모델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크기 때문이라고 봤다. “사실상 일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룩한 싱가포르는 북한에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겠죠. 베트남은 중간 단계 모델이 될 거고요.”
북한과의 사업 교류는 여전히 위험이 크다. 북한 전역은 최고 지도부에 의해 통제되는 만큼 이들의 사업 진행도 지도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규모 대북제재를 결정한 지난해는 후원자들도 국제제재에 영향을 받을까 우려하면서 사업이 대폭 축소됐다. 비록 올해 상황이 급변했지만, 배씨는 “북한과 교류 업무를 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북한의 일은 항상 끝까지 두고 봐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조선교류 내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상황 전개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다. 배씨는 “평화 분위기가 조성돼야 교육 사업도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실무적으로도 제재가 상당 부분 완화되면 교육 사업이나 후원을 받는 데도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시 대표는 이메일을 통해 “6ㆍ12 정상회담이 성공한다면 북한 내에 이를 기념하는 의미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성격의 센터 설립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장 좋은 사업 교육은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싱가포르=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싱가포르=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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