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 처리 방향을 논의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11일 열린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행해온 의견 수렴의 마지막 창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열흘간 실시된 사법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수사 촉구’를 요구하는 소장판사들과 ‘수사 불가’를 주장하는 고위판사들간의 견해가 극명히 엇갈렸다. 이런 가운데 김 대법원장이 “원칙적으로 법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힌 데 이어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국회가 진상규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언급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법부 내 의견이 모아지기는커녕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전국 법원장 35명은 지난 7일 간담회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사법부에서 고발ㆍ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고발이나 수사촉구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고위법관들의 우려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법관들이 “수사까지 가면 안 되니 그만두자”며 사법부에서 미봉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뿌리 채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고, 그 바탕은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 있다.
고위법관들의 인식에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재판 거래 의혹 제기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단정지은 부분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비롯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과 발레오만도 노조 조직형태 변경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이 그대로 시행됐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데도 재판 거래가 없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안이한 인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전 정부에서의 사법관료화에 대한 반성으로 지난 4월 상설화한 사법부내 공식 모임이다. 각급 법원의 대표 판사 119명이 모여 사법행정과 법관 독립에 대한 사항을 논의해 대법원장에게 건의하는 기구다. 사법부내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에서는 법관대표회의의 논의 결과에 무게를 두는 게 마땅하다.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로 지체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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