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부담해야 할 하역비까지
수수료에 넣어 출하자에 떠넘겨
공정위, 5곳에 과징금 116억원
서울 가락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각종 채소ㆍ과일 등이 연간 조 단위로 거래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이다. 농민ㆍ지역농협ㆍ산지유통인 등 출하자가 생산한 농산물이 ‘도매법인→경매→중간 도매인→소매상(마트 등)’ 등을 거쳐 소비자 밥상에 오른다. 도매법인은 농민을 대신해 농산물을 내리고 선별ㆍ진열한 후(하역), 이를 경매장으로 옮겨 판매하는 과정을 총괄하고 위탁수수료를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서울 가락시장에서 위탁수수료를 16년간 담합한 도매법인 5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16억원을 부과했다고 10일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 규모는 한국청과(39억원) 중앙청과(32억원) 동화청과(24억원) 서울청과(21억원) 등이다. 대아청과는 담합 처분시효(5년)가 지나 과징금을 부과 받지 않았다.
이번 담합 사건은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2000년 1월 관련 법을 개정해 표준하역비(농산물 하차ㆍ선별ㆍ진열) 부담주체를 기존 출하자에서 도매법인으로 변경했다. 출하자의 비용부담을 줄이고, 물류선진화 기반을 구축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이들 5개 도매법인은 2002년 4월 위탁수수료를 ‘거래금액 4%+정액 표준하역비’로 합의했다. 법 개정에 따라 자신들이 자체 부담해야 할 하역비를 위탁수수료 세부내역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시 출하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담합은 2002년 4월 과실류 17개, 7월 버섯류 17개, 10월 채소류 54개에 적용됐고, 2004년 1월부터 전 품목으로 확대됐다. 또 이들은 2003년부터 3년에 한번씩 정액 하역비를 5~7% 올리고, 인상분을 위탁수수료에 반영했다.
이처럼 도매법인이 위탁수수료 수준을 단일화하고 하역비를 떠넘기는 등 경쟁을 회피한 결과, 농민들의 부담은 늘어나고 일부 도매법인의 이익은 증가하는 불합리한 시장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게 공정위의 결론이다. 실제 이들 법인의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은 15~22%로 도ㆍ소매업종 평균(2.81%ㆍ2016년 기준)을 크게 웃돌았다. 김근성 공정위 카르텔조사과장은 “특히 가락시장의 거래금액 규모가 2003년 1조6,000억원에서 2016년 2조8,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도 이들은 위탁수수료 수준을 그대로 유지해 출하 농민들의 부담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서울시 등 관계부처에 도매법인간 경쟁 유도를 촉진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도매법인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위한 도매법인 신규지정ㆍ재심사 제도 도입 ▦위탁수수료 산정기준 마련 등이다. 현재 서울 가락시장엔 총 6개의 도매법인이 20여 년간 ‘그들만의 리그’를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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