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앞둔 싱가포르의 경계가 삼엄해지고 있지만, 관광 도시답게 회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축제’로 받아들이려는 모습도 보인다.
싱가포르에서는 9일과 10일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등장해 화제가 됐던 ‘가짜 김정은’ 홍콩인 하워드 X와 ‘가짜 트럼프’ 데니스 앨런이 싱가포르 도심의 한 쇼핑몰에서 만나 일종의 팬미팅 행사를 열었다. 명사와 일반인을 연결시켜준다는 스타트업 ‘바이브스’가 지원한 이 행사에서 둘 중 한 명과 셀피(셀카)를 찍으려면 10싱가포르달러, 둘 모두와 찍으려면 15싱가포르달러를 내야 한다.
김정은 역의 하워드 X는 줄지어 선 시민들 앞에서 “북한에 보내 주는 여러분의 지원에 감사한다. 우리는 늘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며 풍자 연기를 펼쳤다. 줄을 서 있던 천지양(28)씨는 현지 방송 채널뉴스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진짜 트럼프, 진짜 김정은과 99%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워드 X(본명 리 하워드 호 윤)는 전날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통해 입국하다 당국에 1시간 가량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하워드 X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샹그릴라 호텔과 센토사섬에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워드 X와 앨런이 만난 버지스 정션 쇼핑몰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과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불과 3㎞ 가량 떨어진 장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둘 모두와 친분을 과시해 온 옛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은 연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싱가포르에 가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의 싱가포르 여행 경비는 대마초 결제용 가상화폐 ‘포트코인’을 통해 모금한 지원경비와, 로드먼을 비롯해 주로 현역에서 물러난 스포츠스타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프린스마케팅’에서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드먼은 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2017년 방북 때 트럼프 대통령을 다룬 책 ‘거래의 기술’을 김일국 북한 체육상에게 전달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은퇴 후 행보로 ‘악동’ 취급을 받고 있는 로드먼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해 온 몇 안되는 미국인 중에 한 명이라 그의 움직임도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백악관은 이미 지난주 “싱가포르 회담에서 로드먼의 역할은 없다”고 못박았다.
예측불허한 트럼프 대통령과 외부에 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미지수인 상황이지만, 싱가포르 안팎에서는 이미 국제사회의 흥미를 유발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팟캐스트를 통해 로드먼의 싱가포르 방문 소식 등을 언급하면서 “이제는 협상이라기보다 하나의 행사(event)다”라며 “이번 정상회담은 전통적인 외교가 아니라 프로레슬링 경기에 가까운 드라마가 됐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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