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영매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워싱턴 백악관으로 초청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다. 자칫 한반도 문제 논의 과정에서의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관영 신화통신은 8일 주요 기사로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되면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해당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백악관을 예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통해 전해 받은 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해 “매우 따뜻한 편지”라고 호평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건 물론 워싱턴과 평양을 오가며 열릴 수도 있다는 해외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관영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미국 방문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환구시보는 별도의 논평기사에서 “오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연내에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중국 매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북미 간 밀착 가능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이어 백악관에서 회동할 경우 사실상 한반도 문제 논의의 주도권이 북한과 미국에게 집중되면서 중국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게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중국은 남북미 3국 간 연쇄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자 차이나 패싱을 우려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을 두 차례나 중국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며 극진히 환대함으로써 대북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배후설’을 제기하며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한발짝 물러선 상태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을 강조하며 북미 간 직접대화를 촉구해왔지만 막상 북미 양국 중심으로 상황이 진전되자 ‘중국 역할론’을 반복해 주장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북미 간 대화가 본격화하면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발휘 여부는 사실상 북한의 대미 협상전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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