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9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에 전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65년 만에 열리는 이벤트인 만큼 회담일자ㆍ회담시간 하나하나 의미가 남다르다. 이 숫자 속에는 정치적으로 회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치밀한 셈법이 숨어 있다.
9…회담 시작은 미국 프라임 타임에
지난 4일(현지시간) 백악관은 정상회담이 12일 오전 9시에 열린다고 공식 발표했다. 양자 정상회담이 이처럼 이른 시각에 열리는 건 이례적. 이는 미국 내부적으로 회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걸로 보인다. 싱가포르 현지 시각 오전 9시는 워싱턴ㆍ뉴욕 등 미국 동부시간 오후 9시로 미국 방송의 황금 시간대(프라임타임)다. 서부 시각으로도 오후 6시여서 퇴근한 미국인들 대부분이 TV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행보를 볼 수 있는 시각이다.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방송활용의 귀재로 꼽히는 점을 고려하면 시청률 극대화를 위해 회담시각을 정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앞서 북한에 억류됐다 귀환한 미국인 3명의 환영 행사는 지난달 10일 새벽 2시에 열렸는데 CNN, BBC 등 주요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동부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각료들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 자신의 치적을 생방송을 통해 과시한 바도 있다.
11…북미회담은 11월 중간선거용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고, 전직 성인물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성관계 폭로 무마 주장 등으로 곤경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여러 악재를 한 방에 덮어버릴 수 있는 소재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로 통상 집권당이 많은 의석을 잃은 중간선거(11월6일) 전략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적절히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 문제는 중간선거에서 보통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지만 판을 뒤흔들만한 큰 이슈가 없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조커로 활용하려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회담이 잘 될 경우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대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 일부에서는 그 시기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10월 중순 이후부터 중간선거 직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2~13…이틀간 회담 열어 생일(6월14일) 자축?
북미 정상회담이 사진 찍기용 깜짝쇼가 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한 번의 회담으로 될 협상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하루, 이틀, 사흘 걸릴 수도 있다”며 싱가포르에서 추가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열어뒀다. 즉 12, 13일 연속으로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는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합의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부연했는데, 시점과 장소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통 큰 담판이 이뤄질 경우 싱가포르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도 있다. 만일 회담이 하루 연장돼 13일에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다음날 72세 생일(14일)을 맞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엄청난 자축선물이 되는 셈이다. 마침 미 법무부는 14일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인데, 이 보고서에 FBI가 트럼프 대통령을 낙마시키기 위해 대선 캠프에 정보원을 심었다는 이른바 스파이 게이트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와 국내정치에서 두 가지 생일 선물을 함께 받을 수도 있다.
20(2020)… 북한 비핵화 완료 목표 시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비핵화 방법에 대해 “일괄타결을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물리적 이유가 있다”며 비핵화 로드맵 합의는 일괄 타결로 하되 이행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다만 “아주 짧은 시간에”라며 비핵화는 자신의 임기 중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북한 비핵화 시간표가 자신의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자신이 재선에 도전하는 2020년까지 완료돼야 한다며 북한에 비핵화 목표시한 명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 비핵화에 15년이 걸릴 것”이라며 압축적 비핵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고 있지만 “2년 안에도 이뤄질 수 있으며, 이는 현실 가능한 목표”라는 반론(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장) 도 나온다. 전임자의 이란 핵협상을 휴지통으로 보내버리는 대신 북핵 담판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완료 시점 2020년은 마지노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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