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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금수저와 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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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금수저와 흙수저

입력
2018.06.08 19: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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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사이 농림계의 거목 두 분이 먼 길을 떠나셨다. 한 분은 금수저 중에 금수저였고 국내기업을 세계적 반열에 올린 분이다. 재벌답지 않게 소탈하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에겐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한다. 20여년 이상 자연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숲을 직접 가꿨다. 대기업 총수라고 뭐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뛰어난 안목 이전에 자연 사랑이 선행되어야 숲을 가꿀 수 있다.

다른 한 분은 뼛속까지 흙수저였다. 대학도 몇 년 지각해 들어가고 졸업도 늦게 했다.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모은 돈이 쌓이면 등록금 마련하길 반복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중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는 1972년부터 췌장암으로 숨지기 직전인 올 5월까지 농업전문 작가 생활을 했다.

1927년 방송 전파가 송출된 이래 아침을 깨우는 프로그램은 ‘농업’이다. 새벽 5시5분이면 어김없이 시작한다. 누구나 KBS 1라디오를 맞추면 농업정보를 접한다. 76년 전통의 ‘밝아 오는 새아침’이 2003년 폐방을 경험한다. 농업방송을 살려야 한다는 그의 헌신은 ‘농수산 오늘’을 거쳐 ‘싱싱 농수산’으로 이어진다. 90년 한국 농업방송 역사에서 45년 동안 ‘농업 파수꾼’을 자청했다. 물론 돈은 안됐다. 평생 비정규직 작가로 살아왔지만 자존심을 지켰다.

금수저 회장님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숲에서 시민과 소통했다. 숲을 찾으면 무엇을 얻을까. 인간과 자연이 생태라는 통로를 통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치유의 숲을 조성했다. 재벌 총수와 어울리지 않게 수목과 조류 연구, 자연교육의 장을 만들었다.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금수저의 갑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숲길은 거닐기 좋다. 숲은 두세 시간 코스의 완만한 길이어서 산보하기 편하다. 유모차와 노약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과 모노레일도 설치해 숲 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소나무와 이끼, 천년단풍, 자작나무숲, 분재원 등은 세계적이다.

흙수저 작가님에게도 소망이 있었다. 입소문으로 대충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농업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즉, 농어민들에게 가격과 유통 마케팅, 영농기술과 경영, 농정 소식, 해외 농업 등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주는 방송을 만든 대가이다.

농산어촌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농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국민과 농어민에게 인식시켰다. 또 관심조차 없었던 2000년대 초반 청장년이 귀농산어촌해서 첨단 농사와 농어촌 관광 등 농외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회장님에게 숲을 통한 소통이 최고의 가치였다면 작가님에게는 사람과 좋은 농산물을 연결하는 희망농업이 꿈이었다. ‘화담숲’이 완성될 무렵 작가 주도의 ‘은행나무회’라는 모임도 결성되었다. 농림어업계 인사들이 정보와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현재까지 10여년 이상 지속된다.

이들이 영면하자 세상의 반응은 너무 달랐다. 회장님은 모든 언론에서 4,000개의 기사를 보도해 사후 칭송과 조의를 표했지만 작가님은 신문 부고 하나 없었다. 비공개 가족장을 표방하고 문상객을 거절했다. 하지만 작가는 죽음 자체를 알리지 않았다. 발인 직전, 지인들에게 부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게 전부다.

격동의 1945년생, 두 해방둥이는 여의도라는 치열한 하늘 아래 50여년 살다 갔지만 일면식 인연도 없었다. 단지 자신들이 추구하는 농업 현장과 산림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살다보면 비워야 하겠지만 놓을 수 없거나 한 번쯤 기억해야 할 가치도 분명 존재한다. 또 세월에 묻혀 사라지거나 잊을 수 없는 진실도 있다.

구본무 회장님, 정재우 작가님!

감사합니다. 부디 부디 행복하세요.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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