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장 등 36명 “부적절하나 형사 소추 대상 아냐”
일선 판사들은 수사 촉구… 부산지법ㆍ수원지법 등 조직적 요구
김명수 대법원장 “의견 차이 당연 모두 법원 걱정하는 마음서 나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에게 형사조치를 할 것인가를 두고 머리를 맞댄 법원장들이 7일 ‘수사 불가’ 결론을 내면서, 사법부 내에서 힘을 받아 온 수사 불가피 기류에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법원장 등 고위법관 의견이 “수사 불가’ 쪽으로 모이고는 있지만,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 및 일선 판사 목소리도 여전해 최종 선택을 해야 할 김명수 대법원장의 고민은 한층 깊어지게 됐다.
이날 일선 법원장들은 ‘이번 건이 수사 사안인가’를 두고 장시간 법리 토론을 했다. 그 결과 “부적절한 행위이지만 형사적 책임을 물을 사안은 아니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회의에 참석한 한 법원장은 “법리 검토를 했는데 형사상 소추 대상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그래서 위법한 행위는 아니라는 특별조사단 결론을 존중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몇 명이 이 의견에 동의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 법원장은 “큰 흐름에 차이가 없고 (문구의) 뉘앙스 정도 차이가 있었다”고 말해 법원장 대부분이 결론에 동의했음을 시사했다.
고심을 거듭 중인 김 대법원장 상황을 고려해 법원장들이 여지를 남기는 결론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명확한 반대 입장이다. 5일 서울고법 부장판사 회의에 이어 법원장까지 입을 모아 “죄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면서,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 동력은 약해지게 됐다. 법원장의 이날 결론은 “검찰이 수사해 봐야 유죄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위법관들의 ‘비토’ 때문에 수사가 무산되고 의혹이 이대로 덮인다면 사법부는 상당한 후폭풍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선배 법관들이 진상 규명보다 조직 안정을 선택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문건에 거론된 재판 당사자들이 강력히 재심을 바라고 여당에서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어 양 전 대법원장과 전 정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라는 목소리가 잦아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일선 판사들의 요구를 무마하기도 쉽지 않다. 5일까지 일선법원의 단독ㆍ배석판사들이 형사 처리를 요구한 것에 이어, 이날은 중간간부 격인 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수사 필요성과 관련자 단죄를 촉구했다. 부산지법 부장판사 회의는 “주도적 관여자인 전ㆍ현직 담당자에 형사 조치를 비롯한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수원지법은 부장판사를 포함한 판사 전원을 대상으로 전체 판사회의를 열어 “엄중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며, 모든 의견은 법원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법ㆍ고법 부장판사를 기점으로 노ㆍ소장 법관 의견이 첨예하게 갈림에 따라 김 대법원장의 결단이 어느 쪽으로 나든 사법부 내부 파열음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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