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벨라루스ㆍ카자흐 등에
美가 핵폐기 기술ㆍ자금 대고
연구센터 만들어 실업자 지원
北에 당근책으로 적용 가능성
#트럼프 앞서 “美 지출은 없다”
직접 재정 지원할지는 미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6ㆍ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구 소련 국가들의 핵 폐기 방식인 ‘넌ㆍ루거 모델’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 모델은 핵 폐기 과정에서 요구되는 기술 및 자금을 미국이 정부 예산으로 지원한 방식이어서 북한 비핵화를 유인하는 당근책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오늘 샘 넌, 리처드 루거 전 의원으로부터 구 소련의 핵무기를 해체했던 역사적인 넌ㆍ루거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그들의 조언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수개월간 북한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전문가들과 접촉해 왔으며 넌ㆍ루거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미 인터넷매체인 악시오스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펜스 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두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역사적 교훈을 보고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샘 넌 전 상원 의원과 리처드 루거 전 상원 의원은 1991년 구 소련 해체 당시 러시아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에 흩어져 있던 핵무기 및 핵시설ㆍ핵물질 등의 폐기를 위해 미국이 기술적ㆍ재정적 지원에 나서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명 ‘넌 루거법’을 발의해 구 소련 지역의 핵 폐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법은 ‘협력적 위협 감소(CTR)’ 프로그램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소련 해체로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약화된 데다, 경제 위기로 핵 관련 연구자들마저 실업 상태에 처해 불량 국가나 테러리스트에게 핵 물질이나 핵 관련 지식 및 정보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에 미국 정부가 핵 폐기 과정의 기술 및 자금을 대고 연구 센터를 만들어 평화적 목적의 연구를 지원하며 연구자들의 생계까지 보장한 것이다. 미 의회 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2년까지 CTR 프로그램으로 약 90억 달러(9조7,000억원)가 지출됐다.
이 모델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관심은 북한에 제공할 당근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악시오스에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하게 될 경우 이후 조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체제 보장이란 큰 틀의 합의를 이루면 이후 실무 협상에서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이에 대한 보상 조치를 논의해야 한다. 넌 전 의원과 루거 전 의원은 지난 4월 워싱턴포스트(WP)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성공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선 채찍뿐만 아니라 당근도 요구될 것”이라며 북한의 핵무기 해체 및 검증과 경제적 혜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방식을 제안했다. 미국 민간단체인 군축협회의 킹스턴 리프 정책 국장도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는 시간을 두고 단계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행동 대 행동이 요구된다”며 “검증 가능하게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 하부 시설을 폐기하는 데 넌ㆍ루거 프로그램이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미국이 돈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 정부 예산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 미국이 얼마나 재정적 지원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한국, 일본, 중국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국제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이 대두될 여지가 없지 않다. 아울러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 대한 자금 지원보다는 빠른 제재 해제를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변수다. 미국 정부가 ‘넌ㆍ루거 모델’을 북한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제재 해제 이전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비핵화 과정에 한해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양측이 타협점을 모색할 수도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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