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1시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부검실. 건물 1층부터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 지하 1층 부검실에 들어서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이 오전에 부검이 끝난 붉은바다거북을 골격 표본으로 만들기 위한 해체 작업에 한창이었다. 부검대 위 이날 세 번째 부검 대상인 붉은바다거북 ‘AR19’가 모습을 드러냈다.
“얘는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 왜 죽었을까요.”
바다거북 폐사체 부검을 위해 모인 관계자 10여명이 AR19를 둘러쌌다. 지난해 10월 경북 포항 동해면에서 좌초된 채 발견된 길이 88.7㎝, 몸무게는 48.8㎏의 암컷이었다. “근육량 보통, 눈에 분비물 없음. 따개비 19개.” 몇 살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크기로 비춰봤을 때 청년기로 추정됐다. 외관상 검사가 끝나자 3,4명이 모여 AR19의 배를 뒤집었다. 막연하게 등갑을 떼어내 부검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등갑보다는 배갑이 덜 단단하기 때문에 보통 배갑을 떼어낸다. 외관 상태가 좋아 골격 표본이 아닌 박제를 하기로 하고 더욱 조심해서 부검을 시작했다. 해양동물 전문 수의사인 이영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프로그램 선임 오피서가 배갑을 가르고 장기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은 충북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최성준 수의사의 차례였다. 식도부터 장까지 이물질이 없는지 살펴보고 추후 기생충과 미생물, 중금속 검사를 위해 각 장기의 샘플을 채취했다. 육식성인 AR19의 위와 식도에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생선들과 비닐, 노끈이 발견됐다. 부검을 진행할수록 진한 멸치액젓 냄새가 부검실을 휘감았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은 “죽기 직전까지 먹이 활동을 한 것을 봐선 굶어 죽은 것도 아니고 외관상 그물에 걸린 흔적도 없었다”며 “감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현재까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부검한 바다거북은 총 네 마리. 지난해 9월 경북 포항 동해면 흥환간이해수욕장에서 부패 정도가 심각한 채 발견된 올리브 바다거북 ‘AR14’는 앞발이 그물에 감겨 먹이활동을 하지 못해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에서 올리브 바다거북이 발견된 건 두 번째다. 지난달 31일 포항 명일만에서 발견된 붉은바다거북 ‘AR25’는 장의 손상이 심각했다. 지난해 10월 울산 나사리에서 발견된 푸른바다거북 ‘AR21’의 내장에서는 잘린 목장갑, 비닐 등이 발견됐다. 역시 급사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번 바다거북 폐사체 부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바다거북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연구의 일환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 충북대, 전남대, WWF,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바다거북의 먹이원 분석과 사인 규명, 중금속 중독, 기생충 감염 등을 나눠 맡고 있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 바다거북은 7종으로 모두 사이테스(CITESㆍ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등록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붉은바다거북, 푸른바다거북, 장수거북, 매부리바다거북이 발견됐는데 이번에 올리브바다거북이 포함되면서 총 5종이 됐다.
바다거북은 국내 연구자들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김민섭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보전생태 연구팀장에 따르면 1949년부터 2016년 7월 5일 사이 한국연안에서 보고된 바다거북 출현은 148건에 불과하다. 현재 박물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전시하는 표본도 12개체다.
이는 인간과 먹이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인 반면 사람이 먹는 수산물은 아니기 때문에 연구나 보전에서 소홀히 다뤄져 왔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발견한 사람들의 신고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김 팀장은 “어민들이 바다거북을 용왕의 사신으로 여겨 그물에 걸린 채 발견되면 풀어주기도 하고 폐사체로 발견되면 제사도 지내주는 반면, 신고는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바다거북 연구를 위해 바다거북이 많이 출연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양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 발견 시 신고해줄 것을 알린 결과 지난해에만 25건의 바다거북 발견 신고 건수가 접수됐다.
해양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바다거북은 국내외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바다 쓰레기를 먹고 죽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연초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호주 연안에 사는 푸른바다거북 개체군의 99%가 암컷으로 태어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바다거북의 성별은 산란 때가 아니라 부화하는 동안 모래 온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온도가 높을수록 암컷이 많이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란 WWF 선임 오피서는 “건강하지 못한 바다로 인해 발생하는 바다거북의 문제는 결국 우리 인간에게도 올 수 있는 문제”라며 “이제라도 바다거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서식지와 살아갈 환경을 보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천=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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