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루첸코는 제주도의 어느 호텔 바에서 밤늦도록 같이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 대화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루첸코는 오렌지 혁명정부가 표방한 서구주의는 맞았지만 기업과 경제를 키우는 경제정책이 부재해서 실업이 높아지고 물가가 치솟아 인기가 떨어지고 혁명 정신도 퇴색해서 재집권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 자신은 오랫동안 박해를 받을 것이며 그 기간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한국에 들어가면 사기업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가 40대 중반에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 생활을 떠나 다시는 공직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나도 비슷한 운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고민스러운 얼굴은 당시 나의 마음 상태를 잘 반영했기 때문에 내 기억은 그날 대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칠흑의 제주도 바다에 낡은 화물선 배가 지나갔다. 스페인 내전 당시 초라한 의용군 병사들을 태우고 전선으로 가는 기차처럼 보였다.
그 후 나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수출하는 임원이 됐다. 이 글을 쓰기 넉 달 전 2018년 2월말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여러 거래선을 만나 ‘S9’ 의 장점을 알리고 있었다.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회의가 열리는 바르셀로나의 외각지대는 정보기술(IT) 전문가와 비즈니스맨들이 건물을 예외 없이 점령했다. 나는 그 전날 우크라이나 거래선과 술을 마시면서 그의 비위를 맞추고 신제품 판매 물량을 더 확보한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
바르셀로나에 비가 내렸고 진눈깨비가 날렸지만 을씨년스럽지 않았다. 항구의 밤거리는 활기가 넘쳤고 레스토랑 진열대의 소시지와 와인은 이 도시가 미식가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그날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키예프에 가서 루첸코를 만나기로 한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재부를 거쳐 민간으로 간 동안 루첸코는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에 의해 감옥에 투옥되었다. 나는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한 익살스러운 인터뷰를 잘 기억하는데 그것은 그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옥에 오렌지 혁명정권 사람들이 다 들어와 있어서 매일 아침 내각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정신은 혼란스럽지만 외롭지 않아 좋다.”
그 후 마이단 혁명이 일어나 야누코비치 친러 정권이 붕괴한 후 루첸코는 실세 검찰총장으로 복귀했다. 그가 법률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많은 사람이 반대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 동안 보지 못한 연인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갖는 조바심을 갖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 내리자 눈이 많이 내려 주위의 도로와 교량, 시설 등은 다 눈에 의해 거의 마비되고 있었고 초라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은 눈을 열심히 치우고 있었는데 이런 주변의 풍경들은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눈이 나의 권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 없애 버렸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오랜 전쟁과 경제제재 여파로 키예프는 더 헐벗고 본능적 판단으로 살아가는 도시로 변했다. 드네프르강을 건너자 거대한 우크라이나의 어머니 상이 보였다. 그녀는 더 슬퍼 보였다. 상점에서 거스름돈을 건네 준 사내의 입에서는 싸구려 보드카 냄새가 풍겼는데 나는 그런 냄새가 일깨워준 민중의 삶에 더 애수를 느꼈다.
루첸코는 더 현실주의적인 지도자로 변해 있었다. 장난스럽고 순진한 눈빛은 목표를 위해 타협을 하는 마키아벨리적 지혜의 눈빛으로 진화했다. 나는 그에게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의 아들은 비즈니스맨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대화는 정치적 선전 포스터처럼 드라마틱하거나 격정적이지는 않았으나 각자의 주어진 상황에 맞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역사의식은 더 뚜렷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서 왔다고 하니까 그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내가 무국적 고려인을 도와줬던 것에 대해 다시 감사를 표하자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삼성이 우크라이나의 디지털 경제화에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얘기해 줬다. 그는 대화 도중에도 대통령실이나 정보기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확인하기도 하고 나를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루첸코는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디지털 솔루션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전쟁 중이라고.
나는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진정한 국가 정체성을 쟁취하기를 희망한다. 루첸코는 유라시아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살던 무국적 고려인들의 처절한 정체성 확보 투쟁을 진정으로 지원한 사람이었다. 정치적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바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족이나 국가 혹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기여를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지치지 않는 정열과 행동이다. 그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친구이고 고려인들의 친구다.
김도현ㆍ주베트남 대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