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회의가 지난달 31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범위를 확정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위주 전형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 전형의 적정 비율, 수능 절대평가 전환,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 등 세가지다. 이달 말부터 ‘국민참여형 공론 절차’가 시작돼 8월에 최종 대입제도 개편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과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이기정 미양고 교사 등이 지난 4일 한국일보사 회의실에 모여 대입제도 개편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충재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서 참석자들은 “대입제도 변화는 최소화하고 중장기 대입 개편을 염두에 둔 공론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회 -국가교육회의가 내놓은 공론화 범위를 놓고 평가가 다양하다. 급격한 개혁보다 안정적 변화를 선택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1년 전의 대입개편 유예 당시 상황으로 회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배상훈 -이번 개편 논의에 국민적 공감대가 결여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교육적 타당성이나 교육의 장래, 국가사회의 미래는 도외시한 채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도 내 자녀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만 따지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정부에서 이런 의제를 고쳐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건지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이기정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교실혁명을 통해 교육혁명을 이룩하겠다고 돼있다. 하지만 교실혁명이라는 전략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 방안으로서의 입시제도를 국민에게 얘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수시ㆍ정시 비율이니, 수능ㆍ학종 비율이니 하는 미세적 입시 조정에 그치고 있다.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김진우 -지난해 상황을 돌이켜볼 때, 수능 절대평가만으로 해결이 안되니 종합적인 논의를 해보자고 해서 1년의 시간을 유예했다. 그런데 지금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절대평가라는게 수능뿐만 아니라 내신도 함께 논의돼야 하는데 그런 최소한의 고민도 없이 답이 없는 싸움만 붙여놓은 꼴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현상유지를 선택하는 게 낫다.
사회 -대입 현안을 숙의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하게 하는 공론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이번 공론화에서는 물리적 여건상 입시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차제에 국가교육회의나 교육부에서 그런 논의의 틀을 만들 필요는 있다고 본다.
김진우 -이번에 수능 절대평가 도입 여부를 논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신 절대평가도 거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능 절대평가로 변별력에 문제가 생기는데 내신까지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더 큰 논란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도저히 8월까지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방향을 제시만 해도 나쁘지 않은 결론이다.
이기정 -이번 공론화 의제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결정을 미룬다든지, 아니면 다른 집단에 넘기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최악을 피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급적 교육현장에 큰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세가지 의제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와있고, 시민참여단도 그에 부응한 판단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상훈 -국가교육회의를 만든 취지는 긴 안목에서 교육적 관점만으로 접근해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임계치에 도달해 있다. 큰 그림만 합의되면 얼마든지 받을 준비가 돼있다. 그렇다면 몇 개의 선택지를 주고 깜깜이 속에서 고르라고 할 게 아니고 복잡하게 얽힌 입시 문제를 모두 들춰만 낼 수 있어도 소득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잘못된 의제를 떠 안겨 공론화라는 좋은 제도의 신뢰를 실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회 -대입제도 개편 논의에서 가장 큰 관심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능의 선발비율 결정이다.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데, 보수-진보는 물론 각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율을 정하는 게 어려워 상ㆍ하한선을 정한다거나, 대학 권역별로 차이를 두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배상훈 -수업시간에 학부생들에게 이 문제를 과제로 냈더니 형평성 지수 와 수월성 지수를 만들어 나름대로 계산을 했더라. 결론은 현 시점의 학종과 수능 비율이 7대 3이든, 8대 2든 나름대로 오랫동안 국민들 간에 집단지성처럼 조정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균형 상태를 깨려면 아주 강력한 교육적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있는지 의문이다.
이기정 -학종과 수능의 적정비율을 숫자로 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확대나 축소, 현행 유지 중에서 선택할 텐데 국민과 일반 학부모들은 수능의 비중을 키워주기를 원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문제가 의제로 던져진 이상 시민참여단은 수능 비중을 약간 늘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진우 -수능과 학종 비율이든, 수시와 정시 비율이든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이를 정부나 국민이 결정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게다가 수능이나 내신 절대평가 등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 수요자끼리 맞서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초 김진경 특위위원장도 이를 제외시키려 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다시 포함시켰는데 청와대 의지가 강해서 라고 한다. 어느 쪽도 만족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정하느니 현 상태로 놔두는 게 낫다.
사회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여부가 또 다른 쟁점이다. 지난해 절대평가를 보류한 이유가 변별력 부족과 그로 인한 학종 등 다른 전형으로의 풍선효과를 우려한 때문이었다. 이번에 보면 당초 수능 절대평가 전환 시 보완책으로 제시된 원점수 제공을 범위에서 제외했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면 수능 절대평가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기정 -학종과 수능의 비율을 정하라는 것은 사실상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가는 순간 수능과 학생부 비율은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진다. 이미 정답이 주어져 있는 것을 공론화로 정하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진짜 절대평가를 할 의지가 있다면 현재 수능 절대평가를 시행 중인 한국사와 영어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한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설령 이번에 상대평가를 유지하더라도 영어와 한국사 절대평가를 해보니까 그것만으로 학교수업을 못 바꿨다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교육당국은 그런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배상훈 -어떤 교육적 시도도 평가가 가로막고 있으면 효과를 내지 못한다. 교육현장에서 상대평가라는 게 얼마나 인성을 파괴하고 협동을 가로막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4차산업 혁명이니 협업이니 하는 것도 상대평가가 존재하는 한 구두선에 불과하다. 바로 그런 점을 국민이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절대평가를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접근을 해야 하는지 진지한 논의가 요구된다.
김진우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가 함께 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어떤 것을 먼저 가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배움의 질 향상과 과잉경쟁 완화, 공정성에 도움 등 세가지 요소를 놓고 따져봐야 하는데 그런 차원의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게 안타깝다. 게다가 수능의 질 문제도 같이 살펴야 하는데 지금처럼 EBS와 연계해 놓고 그 안에서 해법을 찾으라고 하니 답이 안 나온다.
사회 -입시에서 수능과 학종의 적정 비율이 주요 쟁점이 된 것은 학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당초 학종은 성적 위주의 한 줄 세우기 전형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교육부가 권장했던 것인데 변질됐다는 지적이 많다. 교실수업을 바꿨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으로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기정 -학종 반영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부담이 매우 커졌다. 교과만으로도 경쟁이 치열한데 과목별 경시대회와 봉사활동, 자율동아리 등 모든 비교과 활동이 입시 대상이 됐다. 정규수업의 경우 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이 도입되는 등 바뀐 것은 사실이나 시험과 평가방식은 그대로여서 수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고 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학종의 단점이 더 커 보인다.
김진우 -학종으로 교실수업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객관적인 조사 자료는 없지만 교사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준 건 사실이다. 학종이 견인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교직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비교과 영역은 부작용이 강남 등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그리 심하다고 볼 수 없다. 일부 문제점은 개선돼야 하지만 장려하는 신호는 계속 보내야 한다.
배상훈 -대학만 해도 비교과가 점점 중심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보다 비교과에 더 관심을 갖고 몰입한다. 교육의 지평이 바뀐 것이다. 물론 초중고와는 다르지만 창의와 융합 교육을 지향하는 시대에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종 문제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차원에서 정책역량을 결집해 풀어나가야 한다.
사회 -학종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조만간 교육부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대체로 지나친 비교과 영역을 없애 단순하고 투명하게 한다는 방침인데 교육계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기정 -그런 조치는 필요하다.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학생부 항목이나 글자 수 조정 같은 미세조정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학종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진우 -학종 개선은 필요하지만 학생부 기재 항목을 너무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듣기로는 자율동아리, 자기소개서까지 없앤다고 하는데 그런 것 다 없애면 도대체 학교에 어떤 신호를 주게 될 지가 걱정이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정성평가가 필요하다는 대전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배상훈 -현재의 고등교육과 입시 시스템은 학생수 70만 명 시대를 보고 만들어졌지만 조만간 40만 명 시대로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웬만한 대학은 복잡한 전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 큰 인구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려한 입시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 -이번 대입제도 개편 논의 과정을 보면 국가교육회의의 기능과 역할에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안과 다르게 대통령이 빠졌고, 별 힘이 실리지 못하면서 위상이 실추됐다.
이기정 -국가교육회의 결성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장기과제 에도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입개편안도 교육부가 요청했을 때 국가교육회의는 거절했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의 공론화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자신들이 해야 할 정확한 역할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국가교육회의가 원래 과도기적 기구로 만들어졌으니 당초 약속한 대로 국가교육위원회를 빨리 구성해야 한다. 위원회의 위상에 맞는 사람들을 선정해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
배상훈 -국가교육위원회는 철저히 전문가 위주로 비당파적 구성을 해야 한다. 지금의 입시문제는 원천적으로 직업간 소득격차에서 파생한 문제다. 우리 사회의 승자 독식 구조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책상 위에 올리고, 국민들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게 대통령 직속기구가 할 일이다. 지금 국가교육회의는 교육부장관 자문기구처럼 행동하고 있다.
김진우 -과거 5ㆍ31 교육개혁안을 만든 교육개혁위원회는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고 위원회도 미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좋은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 국가교육회의는 진짜 논의해야 할 의제는 따로 있는데 엉뚱한 것을 하니까 비판을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문제 여론수렴이라는 것이 깜깜이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론화 방식은 신선한 충격이다. 앞으로 제대로 의제를 설정하고 국민의 질 높은 토론과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면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현행 대입제도가 교육부장관 지침 정도로 돼있어 너무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정권이 교체되거나 새 장관이 오면 성과를 내려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교육계 일각에서 대입제도의 큰 틀은 법으로 정해 잦은 변화를 막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배상훈 -헌법에는 교육제도 법정주의가 명시돼 있다. 그걸 위임하고 위임하면서 슬며시 교육부장관이 대학별 전형요강을 전국대학교육협의회로부터 보고받고 그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김진우 -국회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있다. 국회가 진짜 질 높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절차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국회가 아니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타당성 있는 입시안을 마련한다면 정권이 함부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결정한 교장공모제도 당시 교육혁신위원회 합의로 마련됐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보니 정권이 바뀌니까 금새 형해화 됐다.
이기정 -어느 수준으로 법제화, 문제화하느냐가 문제다. 구체적인 사항을 법에 규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다고 추상적으로 정하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사회ㆍ정리=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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