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전주, 서울, 경기, 부산을 두루 돌아다니는 일정 덕분에 최소 5개 도시 곳곳의 선거 공약 플래카드를 구경하게 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정당 세력 불리는 데 이바지하기’ 또는 ‘선임자의 치적이 되지 않도록 계속 사업 뒤엎기’와 ‘지역 특성을 무시한 신규 사업 벌이기’가 아니라 ‘시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표준국어대사전 ‘정치’의 정의)인 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몇몇 플래카드에서나 지역시민 대중의 간절한 바람과 소원을 알뜰히 챙긴 지향을 읽게 될 뿐, ‘일단 붙고 보자’는 심산으로 걸어놓은 코미디 소재 같은 공약이며 옥황상제나 가능할 법한 헛 약속이 펄럭거리는 장면을 허다하게 목격한다.
동서고금 옛 이야기에는 ‘소원 들어주기’와 ‘소원 누리기’가 얼마나 막중하고 막대한 일인지 역설하는 화소가 적지 않다.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는 널리 알려진 전래 화소 ‘소원을 들어주는 두꺼비’를 동시대 아이들의 공간으로 초대해 ‘전래동화의 현대화’에 성공한 역작이다. 주인공 훈이는 아침 등굣길에 자전거 바퀴에 튕겨 나온 두꺼비를 발견하고(모름지기 땅과 가까운 자, 땅을 내려다보고 걷는 자, 우울한 자에게 복이 있으리니!), 도로 옆 풀숲에 놓아준다. 그런데 속표지에서부터 집요하게 잠자리 먹이를 쫓아다니다 사고를 당할 뻔한 이 작고 평범한 두꺼비는 마법을 지닌 존재였다.
풀잎에 맺힌 이슬을 한 모금 마시고 기운 차린 두꺼비가 훈이 어깨로 뛰어오르며 말한다.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어. 보답으로 사소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줄게...” 그러면서 그 한 가지 소원이 꼭 사소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자기는 두꺼비에 불과하므로 중요한 소원을 들어줄 힘이 없다고 말한다. 누가 과연 이토록 자신의 생명성을 또렷이 자각하고, 은혜에 보답할 시점을 미루지 않으면서, 자기의 힘과 권력의 크기를 정확히 인지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두꺼비, 사소한 소원만 들어준다지만 사실은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닐까. 기대를 품게 되는 심상찮은 캐릭터이다.
두꺼비로부터 선물 받은 뜻밖의 소원 카드를, 훈이가 언제 어떻게 쓰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 그림책의 매력이다. 사실 어른 독자로서는 세 가지 소원도 아닌 단 한 가지 소원이 적절히 사소해야 한다는 독특한 딜레마도 흥미롭거니와 소원의 무게나 크기가 어떻게 계량될 것인가에 더 마음이 끌리는 터, 이제 훈이의 소원에 대한 검증이 이어진다. ‘어제 다퉈서 오늘 아침엔 인사도 안 나눈 짝꿍이랑 다시 친해지는 것’은 ‘짝꿍이 정말 화가 많이 났기 때문에’, 두 번째 소원 ‘미술 시간을 체육 시간으로 바꾸는 것’은 ‘다 같이 약속된 시간표를 지키는 건 중요한 일’이라는 이유로 거절된다. 훈이가 독자도 궁금한 질문 ‘도대체 사소한 게 뭐냐’고 볼멘 소리로 따지자 두꺼비가 대답한다. “사소한 게 뭐냐고? 음...아주 작고, 보잘것없고... 뭐, 아무튼 그런 거야!” 그래서 훈이는 작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점심 반찬으로 나올 나물을 햄으로 바꾸는 것’을 소원으로 제안하지만, 편식이 건강상 중요한 문제라는 이유로 또다시 거절된다.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
전금자 지음
비룡소 발행∙44쪽∙1만1,000원
세 번째 소원마저 거절당하자 훈이가 울화통을 터뜨리며 두꺼비를 빨간 공룡 필통에 가둔 장면은 옛이야기 속의 마법사들이 조력자를 제어하지 못할 때 흔히 가하는 잔혹한 형벌을 떠올리게 하면서, 자칫 교실 장면 위주로 기억될 수 있는 이 그림책의 인상을 강렬하게 뒤집는다. 필통 속에서 삐져나온 쬐그맣고 가느다란 다리는 그야말로 ‘사소한’ 크기의 두꺼비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독자로 하여금 두꺼비의 안위를 염려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은 언제나 느닷없다. 최대치 행복을 안겨준 훈이의 소원은 그야말로 사소했다. 이 그림책은 지금 이 현실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을 비춘다.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자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간절한 마음이 이뤄내는 마법에 대해, 작은 것의 큰 힘에 대해, 우리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소원을 구현해낼 수 있는 이에 대해... 하염없는 생각의 길을 열어 보인다.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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