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AI 전문가 김진형 인공지능연구원장
현재
미국 구글,아마존,페북 기술 선도
중국 바이두,알리바바 등 거의 추격
인재 1년에 수만 명씩 쏟아져
서울대 관련학과 정원 55명뿐
소프트웨어 정부연구소도 없어
연봉 수억 원에 인재 해외 유출
미래
기술 발전, 과거에도 일자리 없애
근무시간 축소,기본소득 향상 등
새로운 사회 설계 정교하게 해야
과학계 잘하는 사람에 인센티브
대학별 AI 전문가 풀 넓혀야
정부는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열풍이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AI 전면전이다. 여기서 밀리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사회 전반에 흐른다.
AI가 가까운 미래에 산업구조를 바꾸고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란 전망에 토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장밋빛 기대만큼 AI에 사람이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란 우려가 상존한다. 고도로 발전한 AI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공포감도 적지 않다.
AI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묻기 위해 지난 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의 인공지능연구원을 찾았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에게 4승 1패를 거둔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의 충격에 국내 대기업 7곳이 그해 하반기 30억원씩 출연해 설립한 주식회사 형태의 연구원이다. 1983년 미국 UCLA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AI를 연구한 ‘국내 1호 AI 전문가’ 김진형(69)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AI는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다”며 “우리가 글로벌 수준에 뒤처진 것은 맞지만 조급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AI도 크게 보면 소프트웨어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컴퓨팅(computing)의 가장 앞선 기술을 AI라고 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계산과 비교의 순차적 수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코딩)한 게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데이터와 관련 문서들이 결합하면 소프트웨어가 된다. AI도 구성 형태가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경계가 모호하긴 하다. 알파고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97년 북한이 초기 AI인 ‘은별’을 개발했는데, 우리는 이걸 AI가 아니라 바둑 프로그램이라 불렀다.
어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소프트웨어가 사람이 감탄할 정도의 지능을 갖췄으면 AI라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1980년대에도 AI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당시는 기존 지식(데이터)을 코딩으로 기계에 입히는 단계였고, 이후 나온 게 데이터를 입력하면 그걸로 기계학습(딥러닝)을 하는 ‘데이터 기반형’ AI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가 이런 종류의 AI다. 요즘 추세는 ‘경험 축적형’이다. AI가 사람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알고리즘을 통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다.”
-우리가 뒤졌다면 앞서가는 국가, 잘하는 기업이나 대학은 어디인가.
“미국이 가장 앞섰고 중국이 미국을 거의 다 쫓아갔다. 다들 알다시피 미국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 3대 IT기업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도 최근 AI 분야에서 무섭게 발전했다. 이런 기업들은 ‘AI 퍼스트’를 넘어 ‘AI 올인’ 수준이다.
대학 중에서는 미국의 스탠퍼드와 카네기멜런, 캐나다 토론토 대학이 잘하고 있다. 특히 진득하게 AI에만 집중한 토론토대학에는 딥러닝의 핵심 연구자들이 모여있다. AI가 발전한 국가들의 핵심 경쟁력은 공개 소프트웨어다. 모두 다 공개하고 소스코드까지 나눠준다.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그룹과 산업적으로 응용하는 그룹의 조화가 뛰어나다는 것도 특징이다. 우리는 양쪽이 뒤섞여서 기초연구부터 잘 안 되고 있다.”
-AI 기초연구가 안 된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스탠퍼드대 한 곳의 컴퓨터 사이언스 정원이 660명이다. 중국은 2001년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35개를 설치했는데 한 곳당 학생수가 수백 명이다. 1년에 소프트웨어 인재가 2만명씩 쏟아져 나온다. 이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창업을 하고 혁신을 하며 새로운 물결을 만든다. 국내 최고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고작 55명이다. 외국 대학은 지원자가 많으면 정원을 늘리는데, 우리는 10년 넘게 정원이 고정돼 있어 불가능하다. 정원에 얽매이지 않는 ‘무학년 무학과’ 제도가 있는 대학도 카이스트와 최근 시작한 포항공대 정도다. 세상이 바뀌면 대학도 변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경직돼 있다. 국가적으로도 관심이 없다. 정부출연연구소 중 연구소 이름에 컴퓨터나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곳조차 없다. 우리 사회에서 딱 그만큼의 대접만 받는 것이다. 제조업 시대에 짠 연구개발(R&D)의 틀이 여전히 그대로다. AI만의 문제는 아니고 과학기술계 전체의 문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며칠 전 한림원 세 곳이 국가 R&D 혁신방안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를 연다고 초청장을 보냈다. 나도 한림원 회원이지만 안타깝다. 지금 세계를 이끄는 건 컴퓨팅인데 발제나 토론자 중에 관련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다.”
-국내 인재의 해외유출이 심각하다는데, 연구현장에서도 실감하나.
”올해 2월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가 미국 로펌 변호사를 초청해 미국 이민법 설명회를 열었다. 한 50명 정도 예상하고 공간을 준비했는데, 너무 많이 몰려 급히 대강당으로 장소를 변경했다고 한다. 국내 연구현장이 척박하고 대우도 미국보다 못하니 이해는 한다. 요즘 대학원생들 콘퍼런스 끝나고 나면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기업 관계자들이 밥 같이 먹자고 찾아온다. 밥 먹으며 얘기 듣고 사인도 하고 그런다. 내가 가르친 학생도 학위를 받기 전 구글에 입사하기로 했는데, 연봉이 4억원이라고 하더라. 스탠퍼드나 MIT 등 미국 주요 대학 박사는 연봉이 100만달러부터 시작한다. 국내와는 비교 자체가 어렵다. 페이스북으로 가려다 막판에 애플로 방향을 튼 제자가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부인도 같이 입사를 시켜주는 조건이라 애플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리도 연구원을 채용해야 해서 지방 국립대 교수로 있는 제자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베트남 학생이었는데, 물어보니 이 학생도 ‘몇 달 전 핀란드 기업에 입사하기로 약속했다’며 솔직히 얘기하더라. 인재들 입도선매가 이 정도다. 요즘은 중국 기업들 러브콜도 엄청나다.”
-우리나라에서 AI 리더 그룹은 어디인가.
”대학 중에서는 공과대학 교수가 600명이 넘는 카이스트가 경쟁력이 있다.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네이버 카카오 같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이 잘하는 것 같다. 포털사이트는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어 검색 관련 기술을 쌓아왔고, 파파고 같은 번역 엔진도 만들었다. 포털사이트는 사업에 직접 필요한 거니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자잘한 거지만 꾸준히 계속해오니 경쟁력이 생겼다. 오픈소스도 잘 활용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너무 큰 것을 하려고 한다. ‘빅스비’를 내놓고 한 번에 전 가전을 연결하려고 하지 않나. 게다가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들과 협업도 없다. 공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보다 효율적일 텐데 말이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굉장히 변했다. 제조업 시대에는 과학기술 특허 개수를 기업 경쟁력의 척도로 삼았지만, AI 시대에는 의미가 없다. 애플이 열 몇 번을 신청한 끝에 음성인식 AI 시리에 대한 특허를 미국에서 취득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욕 많이 먹었다. 정형화된 알고리즘으로 다 하는 음성인식인데 그게 무슨 특허인가.”
-SF 영화에 나오는 AI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신경세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걸 응용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70여년 전인 1940년대에 알려졌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이 어려웠다. 1980년대 들어 2층으로 인공신경망(기계학습 모델)을 연결해 훈련을 시켰고, 2000년대 중반 여러 아이디어가 결합해 나온 게 딥러닝이다. 인공신경망을 훈련하는 방법론은 모두 공개됐고 요즘은 200층까지도 올라간다. 기술이 발전하면 층수는 한없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AI는 목표를 제시하면 문제를 잘 푸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 열이 나면 감기에 걸렸다고 알려줘도 왜 열이 나는지, 원인과 결과에 대한 해석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연구원을 비롯한 AI 전문가들이 ‘설명 가능한 AI’를 실현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AI는 아직 감정이나 자의식 단계에 가지 못했다. 사람이 실수하면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AI도 실수하면 부끄러움을 흉내 내도록 입력할 수는 있지만 자의식은 아니다. AI가 발전하며 AI 윤리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구글이 드론 사업을 안 한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중국처럼 AI를 국방과 치안에 대놓고 활용하는 국가도 있다.”
-AI 발전이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란 걱정이 적지 않다.
”인간의 일자리는 굉장히 많이 줄어들 것이다.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일을 없앴다. 과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현재의 정보사회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지 직업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직업들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생겼는데, 이를 AI가 부분 대체해 인간과 같이 일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AI가 발전한다고 사실 보도와 권력 감시, 사회적 의제 설정 같은 언론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건ㆍ사고나 스포츠 경기 결과 같은 단순 사실 전달은 AI가 대체할 수 있어도, 감성이나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분야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탐사보도가 대표적이다.”
-결국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추세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AI가 생산성을 높여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면 그걸 사용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AI는 소비를 못 한다. 왜 주 최대 52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가. 사람은 10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AI에 맡기면 안되나. 산업사회를 생각하며 ‘일을 안 하면 밥을 굶는다’는 개념을 버리지 않으니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 같다. AI로 바뀐 세상에서 시간이 많이 남게 된 사람은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래서 변화되는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기본소득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새로운 사회에 대한 설계를 정교하게 해야 한다.”
-AI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AI가 가져올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솔루션 캐피털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성장을 따지지만, 돈이 없어도 솔루션이 충분한 나라는 행복하게 살 것이란 뜻이다. 시장은 태생적으로 냉정한 곳이다. 경쟁이 일어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공개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AI가 발전하면 시장은 솔루션이 검증받는 곳으로 변화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면 더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쥔 자본가들이 득세한다. 자본은 나눠주면 자기 몫이 줄어드니 공유를 안 한다. 반면 솔루션(지식)은 공유가 가능하다. 나눠주면 더 나은 솔루션이 나올 수 있다. 공개 소프트웨어는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아무리 가난한 교수도 거기에 자신의 지식을 얹을 수 있다. 대기업이 특허를 독점하고, 그걸 사용하면 무차별 소송으로 제재를 가해 싹을 밟아 버리는 횡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혁신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가는 게 AI 시대의 번영원리다.”
-AI의 기반은 빅데이터인데, 국내 기업들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제대로 활용을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데이터 전략위원장을 했었다. 개인정보보호 이슈 다뤘고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는데 가이드라인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철학이지만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는 과학이다. 블록체인 같은 암호화 기술이 발전해 개인정보를 수집한 기관이 암호화를 해버리면 읽어낼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비식별 개인정보 활용은 글로벌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산업을 키우려면 암호화를 제대로 하면서 풀어주고 위반할 시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게 맞다.”
-우리 AI 기술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나.
”과학기술은 수월성 중심으로 가야 한다. 과학계에 만연한 ‘나눠 먹기’ 관행과는 결별하고 잘하는 사람은 더 대접해줘야 한다. 기업은 노동 경직성에 시달리고, 과학기술계는 기득권에 갇혀 있어 AI 전문가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너무나 적다. 연구원에서 행사를 하면 국내 교수 100여 명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그 교수들이 박사과정 1, 2명 지도하는 것을 고려하면 학계만 따졌을 때 국내 AI 전문가 풀은 많아야 200~300명 수준이다. 대학부터 전공별 정원을 없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가야 한다. 정부는 무조건 시작도 못 하게 막는 규제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너무 조급해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AI에 대한 분명한 철학 아래 인재를 키우면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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