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스코리아들의 해외 대회 상위권 입상이 이전보다 활발하게 이뤄진 배경에는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개막식 환영사로 익숙한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란 슬로건이 말해주듯, 88서울올림픽은 동서 냉전체제를 막 내리게 하는 동시에 비극의 분단국가로만 알려져 있던 한국을 지구촌의 주요 일원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였다.
88서울올림픽 대성공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1990년대는 미스코리아들의 국내외 활동이 꽃을 활짝 피운 시기로 평가된다. 1980년대 선배들이 길을 닦았던 해외 대회 입상은 물론 국내 무대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바탕으로 일제히 맹활약을 펼쳤다.
1991년 제35회 ‘선’ 염정아와 1992년 제36회 ‘미’ 이승연은 앞서 당선된 김성희·오현경·고현정·김성령에 이어 국내외 무대에서 두루 성공하고 대중적 인기까지 거머쥔 케이스다.
선발 이듬해 미스 인터내셔널 대회 톱3에 오른 염정아는 전공(중앙대 연극학과)을 살려 연기자로 데뷔해 MBC 인기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했고, 쇼 프로그램 MC까지 꿰차면서 단숨에 톱스타로 발돋움했다.
스튜어디스에서 미스코리아로 변신했던 이승연은 1993년 미스 월드 대회 톱10 진입을 시작으로 친근한 미모와 화려한 패션 감각, 재치있는 언변을 앞세워 드라마·토크쇼·CF 등 대중문화 전 분야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염정아와 이승연 말고도 1992년 ‘선’ 장은영은 이듬해 미스 인터내셔널 대회 출전 직후 KBS 아나운서로 공채 입사, 메인 시간대 뉴스 앵커로 지성을 뽐냈다.
또 1993년 ‘진’ 궁선영은 방송 MC로 활동하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대학 강사를 거쳐 사물 인터넷 스타트업 경영자로 전업해 화제를 뿌렸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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