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정원
자신 이름 딴 ‘김정원의 음악신보’
11월까지 롯데홀서 다섯 차례
지인들로 구성된 연주자들이
슈만 및 그와 관련된 작곡가들의
이야기와 연주를 들려줘
본인이 직접 멘트 쓰고 진행 맡아
방송영화 출연, 아이돌 밴드 결성, 기획자로 변신. 문턱 높은 클래식 음악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소개하려는 젊은 연주자들의 최근 행보를 요약하면 이렇다. 소프라노 임선혜(Mnet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Jtbc ‘이방인’)등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앙상블 디토, 노부스콰르텟은 웬만한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티켓 파워를 자랑하며 ‘클래식계 아이돌’로 활동 중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에 취임, 공연 기획자로 변신했다.
10여년 전부터 이런 시도를 ‘다 해본’ 사람이 있다. 연주자 이름 앞에 ‘꽃미남’이란 수식어를 처음 붙였던 피아니스트 김정원이다. 2000년 쇼팽 피아노국제콩쿠르에 한국인 최초로 본선 참가했던 그는 ‘외도’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신의재 역으로 출연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함께 꽃미남 밴드의 원조라 할 MIK앙상블을 꾸려 10여년 간 활동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음악인들과 함께 작업하며 공연 기획과 섭외를 직접 했다. 지난해부터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클래식 생중계 채널 ‘V살롱’의 예술감독도 맡았다.
지난 달 29일 서울 평창동에서 만난 김정원은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는 있지만 연주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연주자 말고는 어울리지 않는 직책 같아 아내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갈 길을 하나로 정하면 뭘 해야 할 것 같냐고. 브람스 얘기를 하더라고요. 작품만 보면 진중하고 음악 밖에 모르는 사람 같지만, 정치에도 능하고 글도 잘 썼다고. 음악을 사업과 연결시키는 재주도 있었대요. 직업을 하나로 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벌인 일이 자신의 이름 건 콘서트다. 올해 11월까지 롯데콘서트홀의 기획공연 ‘김정원의 음악신보’를 통해 다섯 차례 슈만의 음악을 들려준다. 2015년부터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 여정에 올랐던 김정원이 두 번째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작곡가가 바로 슈만. 김정원은 9월 대구에서 시작하는 전국투어 콘서트로 4년여 간의 슈베르트 전곡 연주를 마친다.
‘왜 슈만인가’란 질문에 김정원은 “유머와 극단을 오가는 음악”과 “쇼팽 같은 라이벌 작곡가를 알리는데도 적극적이었던 인성”을 꼽았다. “저는 스스로 극단적 양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성적이고 연약한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냉정한 점도 있어요. 슈만의 음악에서 그런 제 자신을 발견하죠.” 슈만은 당대 음악평론가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잡지 ‘음악신보’의 편집자로 활동하며 멘델스존, 쇼팽, 브람스 등 그 시대의 새 음악가들을 소개했다. 공연명은 이 잡지에서 따왔다.
“피아노 연주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집약한 악보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피아노는 여느 악기와 다르게 ‘아름다운 멜로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지점이 있거든요. 슈만의 곡은 멜로디, 내성, 화성, 리듬이 다 어울려서 피아노란 악기가 표현하는 희열을 연주 내내 주죠.”
테너 김세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비올니스트 이한나 등 ‘지인 찬스’로 섭외한 정상급 연주자들도 함께 한다. 14일 세 번째 연주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첼리스트 심준호가 함께한다. 고등학교 후배인 백씨는 김정원의 결혼식 축하연주를 할 만큼 막역한 사이. MIK 활동시절 객원 바이올리니스트로 자주 호흡을 맞췄다. 첼리스트 심준호는 고 권혁주가 이어준 인연이다. “IMK 객원으로 가장 많이 초대한 사람이 권혁주씨였는데, 새 앙상블에서 만난 동생을 너무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심준호씨였어요. 한번 보자하면서 (권혁주가 재작년 세상을 떠나) 못 만났는데, 작년 세종문화회관 상주 아티스트로 선정되면서 만든 무대에 초대했죠. 연주도 사람도 너무 좋아 몇 번을 더 같이 연주했죠.”
슈만을 중심으로 슈만과 관련된 클라라 슈만, 브람스, 리스트, 쇼팽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이야기와 연주가 어우러진다. 김정원은 진행과 해설 멘트를 직접 쓴다. 그는 “오전에 한 시간, 자기 전 30분 작곡가에 관한 모든 책과 자료를 읽고 정리한다”고 말했다. 4년 전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 도전 때부터 생긴 일과다. 14일 공연에서는 슈만의 곡 중 피아노 트리오 등의 실내악과 브람스의 ‘단악장 소나타: 스케르초 C단조’를 들려준다. 9월 6일 네 번째 공연에서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4핸즈(Hands) 곡을, 11월 8일 다섯 번째 연주회에서는 슈만, 쇼팽,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김광현의 지휘로 선보인다.
김정원은 “마티네 공연(낮 공연) 특성상 저녁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연주회”라면서도 “클래식 입문자 중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보고 ‘해설은 재미있는데 연주는 어려웠다’고 말할 때가 가끔 있다. 관객이 지루함을 느낀 건 연주의 질이 떨어져서다. 연주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무엇보다 신경 쓰고, 관객이 이 부분을 알아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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