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태풍 이어 학교 화재로 ‘꿈터’마저 잃어버린 아이들에
KT 6개 계열사 봉사단이 ‘선물’… 컴퓨터 기부 등 지원 이어 가기로
“IT 교육 꿈도 못 꿨는데 UHD TVㆍVR 체험 기회 감사”
“아이들 대부분이 마우스를 처음 잡아본다는 사실에 한 번, 순식간에 동영상 편집을 배우고 응용까지 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이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하루빨리 환경이 개선되고 IT 인프라가 구축됐으면 좋겠다.”
지난달 30일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시 인근 둘락 지역의 ‘산호세 센트럴’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이정선(23)씨가 말했다. 그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PC 교육을 진행한 컴퓨터 교실 주변엔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 등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교육현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폐허가 된 교정은 잇따른 재난이 할퀴고 지나간 결과다. 수도 마닐라에서 600여㎞ 떨어진 이 지역은 2013년 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강타하면서 6,009명이 사망하고 1,779명이 실종되는 등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이 학교 역시 당시 큰 피해를 봤지만 복구는 지지부진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0월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학교 건물 13개동이 전소하고 말았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20개 반, 782명의 학생들이 소중한 배움터를 잃었고 지역사회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농업과 어업에 의존해 사는 저소득층 주민이 대부분이고 정부 예산마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자체 복구 작업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실정이다. 수년간 교정 곳곳에 방치된 건물 잔해는 오들도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절망적이던 이곳에 희망의 빛줄기가 닿은 것은 지난달 28일. 대한민국에서 온 ‘에메랄드 빛 손님’들이 컴퓨터 교실과 시청각실로 이루어진 건물을 신축하고 PC와 위성방송 시청이 가능한 초고화질(UHD) TV를 전달한 것이다. ‘에메랄드 빛 손님’은 KT그룹 6개 계열사 임직원 23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의 티셔츠 색깔에서 따온 애칭이다.
봉사단은 2일까지 일주일간 이곳에 머물며 동영상 제작 교육과 에코백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특히, 초고화질(UHD) TV로 구현한 어린이 교육 콘텐츠와 가상현실(VR) 체험은 학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극히 낮은 PC 보급률과 열악한 통신망 탓에 외부와의 소통 기회가 거의 없는 이곳 학생들에게 이번 IT 교육 프로그램은 짧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학교 5학년 지안 학생은 “트와이스 뮤직비디오를 직접 만들어 본 동영상 제작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며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동원한 재능기부 차원으로 봉사활동을 추진한 KT그룹은 앞으로도 이곳에 컴퓨터를 지원하는 등 온라인 기부 프로그램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학교 레르마 비키 교장은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교실과 더불어 수준 높은 IT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새 희망을 심어준 봉사단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교과서조차 구하기 힘들 만큼 열악한 우리 교육 여건에서 IT는 꿈도 못 꾸었는데, KT그룹의 봉사활동이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봉사단원 한예진(27)씨는 “더운 날씨 때문에 힘이 들다가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면 다시 의욕이 생겼다. 이번에 되찾은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타클로반=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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