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트라우마에 쉽게 신뢰 안줘”
박근혜 심리ㆍ과거 발언까지 분석
“비서실장보다 우병우 자주 독대”
측근 성향ㆍ권력구도도 면밀 체크
“상고법원 설치땐 관심 사건 신속”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 로비 시도
“전교조 사건 처리 방향시기 신중”
청와대ㆍ여당과의 거대에 활용 암시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상고법원 추진의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심리 상태와 과거 발언까지 분석해 가며 코드를 맞추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에 잘 보이기 위해 “사법부 활동을 창조경제에 기여하겠다”는 낯뜨거운 제안도 마다하지 않았다.
5일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전략’이라는 문건을 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박 전 대통령은 배신 트라우마 때문에 3권분립 한 축에 쉽게 신뢰를 주지 않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박 전 대통령의 1991년 일기(“모두가 또 변하는데 지금의 내 주변도 어찌 변할지 알 수 없다”)과 2007년 책의 구절(“사람을 배신하는 것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다”)을 예시로 들며 이런 분석을 했다.
또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양승태)의 운영 방안과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은 지향점이 동일하고 국가관과 국정철학이 서로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이런 우려(배신에 대한 걱정)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박 전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 성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하며 청와대를 설득하려 했다. ‘VIP 보고서’라는 이름의 문건에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사법 한류를 추진하겠다”며 “사법제도 수출 등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강력한 추진동력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근혜 정부 중점 과제인 노동개혁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분쟁 전문가 참여제(참심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또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 측근의 성향과 권력구도도 면밀하게 분석했다. 행정처 문건을 보면 ▦현기환 정무수석은 김무성 대표와 호형호제하는 사이 ▦민정수석(우병우)이 비서실장보다 대통령을 더 자주 독대한다 ▦이병기 비서실장이 그만두고 싶어한다는 등의 첩보가 포함돼 있다.
대법원이 청와대뿐 아니라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측과 접촉해 로비를 시도하려 한 정황도 문건으로 확인됐다. 2015년 4월 작성된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과 대응 방향 검토’ 문건을 보면 “상고법원을 설치하면 일반사건(예: 한명숙 사건)이라도 빨리 처리되고, 국가 근간에 관한 사건(예: 원세훈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처리된다는 점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야당 정치인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해 주고, 여당에 불리한 시국 사건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 줄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이 문건에는 “청와대 및 입법부(여당)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교조 법외노조, 세계일보 사장 사건 등 사법부가 주도권을 쥔 사건의 처리 방향과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거래 필요성을 은연 중에 암시하는 내용도 있다.
한편 안철상 행정처장은 이날 조사보고서에 인용한 문서 90개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5건, 과거 추가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3건 등 총 98개 법원행정처 문건을 비실명화 작업을 거쳐 언론에 공개했다. 논란이 확산됨에 따라 특조단이 남은 추가 파일을 공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조단이 공개하지 않은 228개 문건에는 언론사와 민변, 대한변호사협회 관련 첩보성 문서 등이 포함돼 있다. 안 처장은 “공개의 필요성에 관해 합당한 의견이 제시되면 공개 범위는 더 넓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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