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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이다 총리’님, 개각만 하면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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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이다 총리’님, 개각만 하면 괜찮을까요

입력
2018.06.05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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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낙연(오른쪽) 국무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낙연(오른쪽) 국무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재정전략회의 발언으로 연일 시끄럽다. 올 1분기에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크게 줄었다는데 어떻게 이런 통계가 가능한 건지 말들이 나오다 결국 통계 왜곡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전체 가구가 아니라 근로자 통계만 발라내서 보면 90%의 소득이 증가했다”고 통계의 정당성을 강변했지만, 결국 실업자와 자영업자는 뺀 ‘입맛대로 통계’임을 자인한 꼴이 됐다.

발언의 주체는 문 대통령이지만, 통계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한 발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들고 나온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제동을 걸고 최저임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소득주도성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꾸역꾸역 만들어낸 통계를 별다른 의심 없이 인용했을 것이다.

통계가 왜곡됐든 그렇지 않든, 이제 김 부총리는 더 이상 속도조절론을 입밖에 꺼내기는 힘들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1분기 저소득 가구 소득 감소를)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으로 진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필두로 한 청와대 참모진과 김 부총리간의 대립에 대해 장 실장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국가재정전략회의 바로 다음 날 “왜 기재부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앉혔겠느냐”며 컨트롤타워 논란 진화에 나섰지만, 말을 그렇게 한다고 실질적인 힘의 균형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번 통계 왜곡 사건은 대통령의 눈과 귀가 청와대 참모진들에 의해 장악돼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말 아쉬운 건 청와대 참모진이나 김 부총리가 아니라 내각을 총지휘하고 있는 이낙연 총리다. 사실 이 총리는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는 현 정부 내각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통쾌한 답변을 쏟아내며 국감장을 제압했고, 재활용 쓰레기 대란, 대입정책 혼란, 라돈 침대 사건 등 국민들이 격분하는 사안이 터질 때마다 해당 장관들을 향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내뱉어 왔다. 국민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전직 언론인 출신의 이런 통렬한 발언에 상당수 국민들은 “속 시원하다”며 ‘사이다 총리’라는 별칭까지 붙여 주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제기돼 온, 내각은 보이지 않고 청와대 참모들만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을 않고 있다.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이 총리가 무슨 말을 했다더라는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고 내각이 들러리를 서는 상황에서는 어느 장관도 제 몫을 하길 기대하긴 힘들다. 이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청와대와 내각의 역할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하기에 그렇다. 청와대조차 논란이 될 때마다 “경제 컨트롤타워는 김 부총리”라고 진화성 발언을 내놓는 것도 당위성으로 보면 이를 거스를 명분이 없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그런데 책임총리라는 이 총리가 정작 이런 청와대를 향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책임 방기에 가깝다.

이 총리는 지방선거 뒤 부분 개각이 있을 거라고 했다. “장관 임명 때도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청와대와 협의 과정을 거쳤던 것처럼 이번에도 협의를 할 것이고 이미 기초 협의도 했다”고 했다. 무능한 장관들을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데는 100% 동의한다. 언뜻 떠올려봐도 꼭 교체가 됐으면 하는 장관들이 여럿이다. 그런데, 단지 사람만 바뀐다고 될 일은 아니다. 자리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 한, 경제만이 아니라 외교,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패싱’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총리 혼자 ‘패싱’을 면할 요량이 아니라면, 이런 청와대 국정 주도에 대해서도 ‘사이다’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이 옳다 그르다를 가르라는 게 아니라, 장관이 내뱉은 발언이 정작 정책에서는 180도 뒤집어지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의 협의는 개각 명단보다 잘못된 국정 운영 구조에 대한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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