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18 미코통신 D-29] 한국의 미(美)를 알렸던 미스코리아 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18 미코통신 D-29] 한국의 미(美)를 알렸던 미스코리아 ①

입력
2018.06.05 10:37
0 0

초창기 미스코리아는 한국을 지구촌 전역에 널리 알린 ‘민간 외교사절’이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았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실은 재건의 희망으로 가득한 모습을 상징했다.

초대 미스코리아 ‘진’ 박현옥의 뒤를 이어 국내외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주인공은 1959년 제3회 대회 ‘진’ 오현주였다.

1959년 제3회 대회에서 ‘진’으로 뽑힌 오현주. 미스코리아 60주년 기념집 제공
1959년 제3회 대회에서 ‘진’으로 뽑힌 오현주. 미스코리아 60주년 기념집 제공

지금으로 치면 트와이스 멤버 전원의 인기를 모두 합친 것 이상으로 ‘국민 아이돌’ 대접을 받았던 오현주는 출전할 때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민주당 정권 각료였던 국회의원 오위영의 막내딸로, 경기여고 졸업후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말 그대로 재원 중의 재원이었다.

161.5㎝ 52㎏의 체구와 35-21-36의 사이즈로 기골이 장대한(?) 서양 미인들에 비해 많이 아담했지만, 유창한 영어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국제무대를 휩쓸었다.

같은 해 7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는 그의 독무대였다. 전 세계 34개국 34명의 미인이 출전한 가운데 특별상 5개 부문중 인기상과 스피치상, 포토제닉상 등을 거머쥐었다.

수상 장면이 TV로 방영되면서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유니버설 콜럼비아 등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캐스팅 제의가 쏟아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귀국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이후 미국 유학을 거쳐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연극과 교수와 동랑레퍼토리극단 대표를 역임하며 연극계 후학 양성에 힘썼고 2010년 타계했다.

제7회 대회 ‘진’ 김명자. 미스코리아 60주년 기념집 제공
제7회 대회 ‘진’ 김명자. 미스코리아 60주년 기념집 제공

1963년 제7회 대회에서 ‘진’ 왕관을 썼던 김명자도 초창기 미스코리아로 오현주와 더불어 한국의 미를 전 세계에 알렸다.

숙명여대에 다녔던 김명자는 서구적인 느낌의 또렷한 이목구비를 앞세워 한국인 최초로 미스유니버스 톱(TOP) 5에 올라 다시 한번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미스코리아가 수많은 미인대회 입상자들 가운데 미모와 지성,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표 미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배경에는 대선배들의 이 같은 선례가 굳게 자리잡고 있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