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한국을 출발해 이동시간만 16시간 이상 걸리는 강행군 끝에 러시아월드컵 사전캠프 장소인 오스트리아 레오강에 도착한 축구대표팀은 현지시간 4일 오전에 휴식을 취한 뒤 오후에 첫 훈련을 진행했다.
오후 4시 시작한 훈련은 회복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을 한 뒤 간단한 체력 프로그램에 이어 팀을 나눠 족구를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신태용 감독은 이날부터 곧바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싶어 했지만 토니 그란데 수석코치와 하비에르 미냐노 피지컬 코치가 “지금은 휴식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신 감독이 받아들였다.
족구는 회복 훈련의 단골 메뉴다. 선수 단장 자격으로 오스트리아에 함께 온 최영일 협회 부회장은 “분위기 전환에도 으뜸이고 근육을 풀기에도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승우와 박주호, 문선민, 이재성 등이 속한 단신 팀과 김영권, 장현수, 오반석 등이 속한 장신 팀의 대결은 ‘거꾸리와 장다리’를 보는 듯했다. 코칭스태프들도 함께 참여했는데 차두리 코치는 연일 현란한 오버헤드 킥으로 상대 코트를 맹폭했다.
그러나 두 선수만은 족구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장 기성용과 구자철이었다.
둘은 그라운드 한 쪽으로 나와 무릎이나 발목 등의 보강 훈련을 했다. 서로 운동 기기를 바꿔가며 구슬땀을 흘렸다. 동료들이 깔깔 웃으며 족구를 즐길 때도 기성용과 구자철의 표정에서는 웃음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족구까지 다 마친 뒤 선수들은 그라운드 가운데에서 둥그렇게 둘러 서서 자체 미팅을 했다.
주장이 간단히 한 마디하고 해산해 버스에 올라타는 게 일반적인데 이날은 시간이 꽤 길어져 궁금증을 자아냈다. 기성용이 말을 마치자 구자철이 바톤을 이어받아 또 한참 이야기를 했다. 이처럼 15분이 넘는 자체 미팅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미팅이 끝난 뒤 태극전사들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져 있었다.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취재진의 질문에 기성용은 “월드컵을 위해 잘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여기서 말 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유쾌했던 훈련 분위기에 선수들이 취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는 주문이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신태용호의 러시아월드컵 최종엔트리 23명 중 4년 전 브라질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는 기성용과 구자철 외에 김신욱, 김승규, 손흥민, 이용, 박주호, 김영권까지 8명이다.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다. 보통은 전 대회 경험자가 절반 이상은 된다. 이들은 브라질월드컵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당한 엿 세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기성용과 구자철은 브라질월드컵 때 팬들이 얼마나 큰 실망을 했고 그 일로 대표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들”이라며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는 마음이 다른 선수들과는 또 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레오강(오스트리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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