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정화장치(DPF)가 장착된 경유(디젤)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휘발유ㆍLPG차의 배출량과 비슷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14% 정도 낮다. 환경 친화성이 입증된 만큼 경유 중심의 수송연료정책이 필요하다.”
약 10년 전 범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클린 디젤’에 대한 당시 정부의 평가다. 2009년 유럽연합(EU)가 정한 자동차 유해가스 기준인 ‘유로 5’에선 질소산화물을 이전보다 60% 가까이 감축하는 기준을 적용,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차는 시장에서 퇴출했다. 유로5를 만족하는 경유차는 연비도 높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친환경차로 여겨졌다. 우리 정부는 그해 온실가스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각되자 경유차를 ‘클린 디젤’이라는 말로 선전했고, 당시 주무 부처였던 지식경제부와 국회가 경유차에 대해 배출가스 수준이 하이브리드차와 비슷하다며 ‘친환경차’ 범주에 포함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유차 생산확대와 판매를 장려했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엔 경유 택시에 유가 보조금까지 지급했다.
그런데 2016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사태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경유차에 미세먼지 배출 주범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더욱이 경유차가 가솔린차보다 질소산화물을 23배 이상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클린 디젤’을 강조했던 지식경제부의 설명도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는 지난 4월 ‘배출가스 등급제 시행’ 보도자료를 통해 전기차ㆍ수소차는 1등급, 가스차ㆍ휘발유차는 제작연도에 따라 1등급을 주면서 디젤차의 경우 최신 차는 3등급(2009년 9월 이후 출시), 노후 차는 5등급(2005년 이전 출시)을 매기겠다고 밝혔다. 디젤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만큼 판매가 줄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서울시는 5등급 디젤차에 대해선 아예 도심 진입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디젤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자동차업체가 떠안았다. 정부가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지정한 2009년 이후 디젤차 판매량은 5년 만에 33% 급증했다. 친환경차로 지정된 경유차는 환경개선부담금이 면제되고, 남산터널 등을 이용할 때 내는 혼잡통행료 50% 감면, 공영주차장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급정책에 믿음을 갖고 디젤차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현재 일순간 모든 혜택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 미세먼지 배출 차를 모는 ‘민폐’ 운전자라는 눈칫밥까지 먹는 처지가 됐다.
디젤차 기술개발에 주력해온 자동차업계는 천문학적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9월 환경부는 연비측정방식을 바꿔 사실상 기존 경유차 판매를 막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시행하려다, 업체들의 하소연에 막판 시행을 1년 연기하기도 했다.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 시행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경유차 판매 비중은 높다. 올해 1~4월 국내 판매된 차 중 경유차가 27만7,000대로 45%를 차지한다. 한국GM을 제외하곤 국내 자동차업체에서 대부분 디젤 엔진 라인업 판매량이 40%를 넘어선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인 쌍용자동차는 디젤 엔진 비중이 63%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경유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는 등 규제에 나서면서 자동차업계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클린 디젤 정책 당시 경유차가 하이브리드차에 육박할 정도로 미세먼지 정화기술이 높다고 판단하며 섣부른 정책 결정이 이뤄졌다”며 “디젤엔진 개발에 거액을 투자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급변한 환경규제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