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은 KB증권 사장의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지음ㆍ노정태 옮김
김영사 발행ㆍ300쪽ㆍ1만3,000원
▦추천사
이 책은 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 등 이 시대 아웃라이어들의 성공 비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그들의 성공 비결을 ‘그들이 지닌 탁월한 재능’이 아닌 ‘그들이 누린 특별한 기회’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후천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끊임 없는 관심과 무한한 열정이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웃라이어(outlier)는 통계학에서 ‘다른 표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관측치’를 뜻한다. 소인국의 걸리버 같은 존재를 일컫는다. 저명 경영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은 ‘성공’을 잣대 삼아 이 단어를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이란 의미로 변용했다. 음악에선 비틀스, 정보통신(IT) 부문에선 빌 게이츠와 빌 조이(썬마이크로시스템즈 창립자), 뉴욕 법조계에선 전설적인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 조셉 플롬 등이 이 책에서 아웃라이어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다.
통상 통계학에서 아웃라이어는 표본의 특성을 파악할 때 배제 대상이 된다. 소인국 사람들의 평균 신장을 계산할 때 걸리버의 키는 빼는 식이다. 눈부신 업적을 거둔 이들을 ‘범접 못할 재능과 열정의 소유자’로 간주하는 세간의 인식 또한 통계학에서 아웃라이어를 취급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 책은 성공에 대한 ‘신화적 통념’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성공을 개인의 비범한 자질로 환원하는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핵심적 환경과 조건을 살핀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머지 눈에 잘 띄지 않는 데다가 실력보다는 운에 가까운 것들이라고 저자는 통찰한다.
책에 제시된 풍부한 사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로 ‘세계 최강’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탄생월 분석이 있다. 이 나라 주니어 명문팀 선수단의 생일을 분석한 결과 1~3월 출생자가 전체 선수의 40%이고, 이들을 포함해 상반기(1~6월)에 태어난 선수가 전체의 70%에 달했다. 얼핏 신기해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단지’ 캐나다에서 1월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고 그에 맞춰 하키 클래스를 짜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니까 기준일에 하루가 모자라 만 10세가 되지 못한 1월2일생은 같은 해에 태어난 12월31일생과 같은 반에 속하게 된다. 하루가 다른 성장기 아이들에게 12개월은 엄청난 체격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시간이고,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1~3월생은 유망주로 발탁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선천적 재능을 따지기 앞서 그저 몇 개월 일찍 태어난 것만으로 성공의 기회를 쥘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컴퓨터 발전의 선구자들이 대부분 1950년대생이고,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75인 중 14명(18.7%)이 1830~40년 미국 출생자인 것도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선물이다.
이처럼 ‘운 좋게’ 주어진 기회가 연습량 확대로 이어지며 성공의 발판을 다진다. 저자는 이를 성공을 보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풋내기 고교생 밴드였던 비틀스에겐 2년 간의 함부르크 시절이 ‘1만 시간’을 채우는 시기였다. 스트립쇼 막간에 손님들을 붙잡아 두려 록밴드 공연을 여는 독일 함부르크 지역 클럽에서 날마다 밤샘 공연을 했던 경험이 비틀스가 슈퍼 밴드로 도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한 것이다. ‘금수저’ 출신인 빌 게이츠에게도 프로그래밍에 무지막지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개인용 컴퓨터(PC)가 없던 시절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대도시에도 몇 대 밖에 없는 메인컴퓨터에 접속해야 했는데, 게이츠가 다니는 명문 사립학교의 어머니회가 그 비싼 접속 비용을 지불해준 것이다.
성공이 재능뿐 아니라 시대 여건이나 성장 환경에도 좌우된다는 점을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는 ‘성공은 운에 달렸다’는 류의 숙명론을 제시하고자 함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1만 시간’을 채울 의지가 있다면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세심하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역설한다. 예컨대 아이스하키 꿈나무들의 생일을 3개월 단위로 분류해 훈련반을 편성하면 우리는 더 많은 아웃라이어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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