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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조지 월러스

입력
2018.06.10 16: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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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오늘 앨라배마대 정문에 서서 흑인 등교를 막았던 미국 보수 정치인 조지 월러스는 70년대 말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내가 틀렸다"며 과거를 반성했다. biography.com
1963년 오늘 앨라배마대 정문에 서서 흑인 등교를 막았던 미국 보수 정치인 조지 월러스는 70년대 말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내가 틀렸다"며 과거를 반성했다. biography.com

1960~80년대 미국 앨라배마 주지사로 통산 16년을 재임하며 미 헌정사상 3번째 장기 기록을 보유한 조지 월러스(George C. Wallace, 1919~1998)는 민주당 소속이면서 당과 케네디 정부의 흑인 인권정책에 반대한 분리주의자였고, ‘철부지 데모꾼들’을 제압하지 못해 베트남이 패망했다고 믿던 강경 보수 정치인이었다.

그의 긴 정치 이력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주지사 첫 임기(1963~65) 초반인 63년 6월 11일 앨라배마대 흑인 입학생의 등교를 막은 일이었다. 54년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판결’로 흑백 분리는 위헌 판정을 받았지만, 남부의 주들은 연방 정부의 결정을 주정부 자치권 침해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학생 전원이 백인이던 앨라배마 대학이 63년 비비안 말론 등 두 명의 흑인 학생의 입학 원서 접수를 거부했다. 연방대법원은 입학허가를 명령했다. 첫 등교일인 6월 11일, 주지사 월러스는 대학 정문 포스터 오디토리엄 앞에 버티고 서서 두 학생의 등교를 막았고, 케네디 정부는 연방군을 투입했다.

앨라배마대학서 법학을 전공한 월러스는 46년 주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48년 트루먼 정부의 인종차별 철폐 조치에도 반대했지만 그건 연방 패권에 대한 반대에 가까웠고 인종문제에 관한 한 그는 온건파에 속했다. 58년 민주당 주지사 후보 지명전에 나설 당시 그의 상대는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주검찰총장 조지 패터슨이었다. 그 선거에선 흑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월러스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그는 패배했다.

완고한 분리차별주의자로 변신한 그는 62년 선거에 승리했고, 주지사 취임연설에서도 분리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선언했다. 64년 선거 연임. 3선 연임 불가 규정을 우회해 66년 선거 땐 아내를 출마시켜 당선되게 했다. 68년 대선 출마를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인종정책 등 그의 정치적 노선이 문제되자 아메리카독립당이란 3당을 창당해 출마, 결과적으로 공화당 닉슨의 당선에 일조했다. 다시 민주당에 복귀해 70년 주지사 당선. 72년 대선 출마와 피격-부상. 74년 주지사 당선. 76년 대선 예비선거 출마…. 그는 ‘남부의 대통령’이라 불렸다.

70년대 말 그는 자신의 인종차별 소신을 포기하고 공개적으로 반성했다. 그는 63년 그가 섰던 앨라배마대 정문에 서서 “내가 틀렸고 과거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그러곤 82년, 흑인들의 지지까지 받으며 주지사에 다시 당선했고, 주 정부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흑인 각료를 임명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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