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하면 대한해협에 몸 던질 것”
일본 꺾고 스위스대회 첫 진출
후보도 없이 치른 2경기 16실점
32년 지나서야 두번째 본선 진출
1986년 멕시코대회 박창선 첫 골 주인공
불가리아와 비겨 첫 승점 기록
한국일보가 창간한 건 6.25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4년이다. 그 해 한국의 축구 또한 월드컵에 처음 진출하는 새 역사를 썼다.
그 해 3월 열린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대결을 펼쳐야 했지만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은 일본 대표팀의 방한을 불허했다. 결국 모든 경기를 일본에서 치러야 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출국 인사차 경무대를 방문한 이유형 대표팀 감독은 "일본에 지면 선수단 전원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고 결전의 의지를 담은 각오를 전했다. 한국은 1차전에서 최정민(2골)을 비롯해 성낙운, 정남식, 최광석의 릴레이 골로 5-1 완승을 거뒀다. 일주일 후 열린 2차전에서는 2-2로 비겨 1승 1무를 기록하면서 한국은 감격의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대표팀은 한국일보 창간(6월 9일) 일주일 뒤인 6월 16일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첫 경기 시작을 불과 10시간 앞둔 개막일 밤이었다. 선수단 전원이 함께 탈 비행기표를 구하기 힘들어 기차와 미 군용기를 타고 태국과 인도를 거쳐 약 50시간의 비행 끝에 현지에 도착했다. 선수단복도 없어 외상양복으로 대체했고, 유니폼 위에 실로 등번호를 기워 흉내만 냈다. 그마저도 비행기 탑승 문제로 선수단이 나뉘어 가는 우여곡절 끝에 헝가리와 1차전에서는 후보 선수도 없이 치러야 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한국은 6월 17일 취리히 하르트룸 스타디움에서 열린 헝가리전에서 0-9로 참패했다. 첫 TV 중계가 실시됐던 월드컵이었기에 패배의 충격은 더했다. 사흘 후 터키전에서도 0-7로 대패했다. 결국 사상 첫 월드컵 출전의 기쁨도 잠시, 대표팀은 2경기에서 무득점 16실점의 참담한 성적표로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스위스의 쓰라림은 오랜 시간 한국 축구를 지배했다. 그 이후엔 월드컵 본선 진출 자체가 이루기 힘든 꿈이자 희망의 벽이 됐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 땐 영어를 못하는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참가 신청서를 서랍 속에 보관하다 제출 기한을 넘겨 예선에 나서지 못한 해프닝이 있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선 강호 북한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정부가 참가 취소를 지시해 지역예선에 불참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아시아 예선 호주전에선 임국찬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1무 1패로 탈락했다. 임국찬은 국민적인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최종예선 때는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김호곤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출전해 기대를 모았지만 호주 원정에서 1-2로 진 뒤 최정민 대표팀 감독이 중도 사퇴해야 했고, 본선 진출에도 실패했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 1차 예선 쿠웨이트전에선 심판의 노골적으로 편파 판정 끝에 0-2로 졌고 최종예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줄기차게 월드컵 본선 문을 두드린 한국의 쾌거는 32년이 흐른 뒤에야 이룰 수 있었다. 1986년 멕시코 대회다. 최종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만났다. 원정 1차전에서는 정용환, 이태호의 연속 골로, 홈 2차전에서는 허정무의 결승골로 2연승하며 스위스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는 1무 2패로 조 최하위는 피하지 못했으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박창선이 역사적인 본선 첫 골을 터뜨렸고, 불가리아와의 2차전에선 1-1로 비겨 '첫 승점'을 기록했다.
기적의 드라마는 안방에서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연출됐다. 첫 골, 첫 16강 진출, 첫 8강 진출, 첫 4강 진출, 월드컵 본선 전 경기 소화 등을 모두 이뤘다.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선 사상 첫 원정 대회 16강 진출을 일궜다.
한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천신만고 끝에 9회 연속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국제축구연맹(FIFA) 211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을 포함해 6개국뿐이다. 이제 9일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대회에서 한국은 다시 도전에 나선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 북미의 강호 멕시코, 유럽 다크호스 스웨덴과 2장의 16강 진출 티켓을 놓고 버거운 승부가 예상되지만 ‘아시아의 맹주’ 자존심을 드높일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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