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 폄하됐지만, 드로잉은 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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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폄하됐지만, 드로잉은 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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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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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현대미술가 로니혼 개인展

‘Remembered Words’ 조명

Remembered Words–(Fat). 2012~2013. Gouache, watercolor, graphite, and gum Arabic on paper. 38.1X27.9㎝. 국제갤러리 제공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로니 혼의 개인전 ‘Remembered Words’가 국제갤러리 K3에서 열린다. 2007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네 번째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전시명과 동일한 제목의 드로잉 연작 ‘Remembered Words’를 단독으로 조명한 최초의 개인전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특정 시기에 진행된 해당 연작은 로니 혼의 다른 작품군과 개념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작업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다.

1955년 뉴욕에서 태어난 작가는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을 졸업한 후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개념적이고도 비평적인 작업을 선보여온 그는 ‘Remembered Words’를 비롯해 ‘Hack Wit’(2013~2015), ‘Th Rose Prblm’(2015~2016), ‘Dog’s Chorus’(2016) 등 일련의 드로잉 연작이 작가 본인의 활동에서 매우 근원적이고도 수행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Remembered Words–(Whippy). 2012~2013. Watercolor, graphite on paper. 38.1X27.9㎝. 국제갤러리 제공

“드로잉은 나 스스로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드로잉을 시도하는 이유도 작가로서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심리적 지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드로잉은 지금까지 미술 역사에서 폄하되어 왔다”며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드로잉이야말로 그 자체로 심오한 형식이며 여러 타 장르와도 긴밀히 만난다고 생각했기에, 내 작업의 주요 형식이 될 거라 믿었다. 특히 그 중 ‘Remembered Words’는 ‘자서전적 풍경화’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명상할 때와 같은 상태에서 기억 속 단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국제갤러리 K3를 채우고 있는 ‘Remembered Words’는 작가의 말대로 단어의 의미와 기억 간의 미묘한 관계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3X3 격자로 배열된 아홉 점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모두 동일한 크기의 드로잉은 수채 물감으로 그린 원들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의 원은 격자 패턴을 이루며 바로 아래 쓰인 단어들과 함께 나열되거나 율동감 있게 여기저기 흩어지고 겹쳐진다.

논리적인 동시에 우발적인 동그라미들은 배치나 순서를 바꾼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이 전시 공간을 왕래하며 충돌하고 공명한다. 이런 과정은 작가의 ‘기억된 단어’들이 사회, 정치, 인종, 문화 등의 프레임, 주도적 인식과 무의식 속의 자아는 물론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즉 보존된 기억의 표상들이 유영하는 ‘집단의 문체’임을 보여준다. 각 단어의 의미와 색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관객들의 시도는 점차 작가와 관객 간의 의식의 흐름이 역동적으로 교차하고 어우러지는 ‘사유의 지점’에 이르게 된다.

국제갤러리 3관에서 전시 중인 로니 혼의 드로잉 작품. 국제갤러리 제공

서로 물리적 간격을 유지하며 배치된 총 15점의 전시작은 작가의 그리고, 기억하고, 쓰기와 함께 관객의 멀리서 동시에 가까이서 보기의 행위가 수반된 복합적이고 개방적이며 확장 가능한 문화의 어휘를 창조해낸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미국 출신의 현대미술가 로니 혼. 국제갤러리 제공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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