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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20세기 냉전 낳은 마셜 플랜… ‘북한판 마셜 플랜’은 한반도 냉전 끝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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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20세기 냉전 낳은 마셜 플랜… ‘북한판 마셜 플랜’은 한반도 냉전 끝낼까

입력
2018.06.03 15: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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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6월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하버드대 졸업식에 연사로 참석한 조지 마셜(가운데 양복 입은 이) 당시 미 국무장관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7년 6월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하버드대 졸업식에 연사로 참석한 조지 마셜(가운데 양복 입은 이) 당시 미 국무장관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7년 6월5일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 조지 마셜 당시 미 국무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2차 대전 후 폐허가 된 유럽의 현실을 짚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세계 경제의 건강성 회복을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안정도, 평화의 보장도 없을 테니까요. 미국 정부의 지원은 임시처방이 아니라 ‘치료법’이 될 것입니다.” 20세기 중ㆍ후반부를 지배한 전후 세계질서를 낳은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ERP), 이른바 ‘마셜 플랜’이 탄생한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마셜은 이날 “유럽 재건을 돕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에 앞서, 유럽 국가들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는 유럽의 사업이고, 이니셔티브도 유럽에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스스로 경제회생 의지를 갖고,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라는 뜻이었다.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들은 거부했지만, 서유럽은 미국이 내민 구명줄을 곧바로 부여잡았다. 영국과 프랑스, 서독 등 16개국은 다음달 경제 재건안을 냈고, 이들 나라에는 이듬해 4월부터 4년간 총 130억달러(현재 가치 1,300억달러)가 투입됐다. 유럽 경제는 빠르게 부활했고, 마셜은 195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마셜 플랜이 드리운 그늘도 짙다. 인도주의적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 미국의 진짜 속내는 소련 공산주의의 확장에 대한 ‘공포심’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유럽 내 영향력을 키운 미국은 1949년 서유럽 국가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 공산주의 진영에 맞선 안보 블록을 형성했다. 소련도 공산권 국가들과 함께 코민포름(1947년), 바르샤바 조약기구(1955년) 등을 잇따라 창설하는 등 맞불을 놓으면서 전 세계는 냉전 시대에 돌입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벤 스틸은 저서 ‘마셜 플랜: 냉전의 여명’에서 “스탈린은 마셜 플랜의 목표(소련 견제)를 확신하기 전까진 미국과의 협력을 배제하지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유일한 냉전 지대로 남은 한반도에서 최근 ‘북한판 마셜 플랜’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달 1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비핵화를 조건으로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돕겠다고 공표하면서부터다. 물론 ‘미국민의 이해’를 당부하며 정부 자금을 투입한 마셜 플랜과, “미국민의 세금을 북한에 지원할 순 없다”며 ‘민간 투자 허용’ 방식을 취한 폼페이오의 제안을 동일선상에 두긴 어렵다. 그러한 ‘작명(作名)’보다 오히려 주목할 대목은 미ㆍ소 냉전을 촉발한 원조 마셜 플랜과는 반대로, 대북 경제지원이 한반도 냉전 해소로 이어질 수 있느냐일 것이다. 북한판 마셜 플랜의 가동 여부를 가늠할 6ㆍ12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 왔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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