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
헌법 만든다는 것도 모른 채 모여
참가자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지배
그러나 그 헌법이 시행착오 거치며
입법ㆍ행정ㆍ사법 민주주의 가능케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지난달 24일, 역시나 무산됐다. 서로의 정치적 책략과 책임을 묻는 말들이 무성하지만, 분명한 건 정치적 속셈 없는 헌법은 없다는 점이다. 모든 헌법은 반드시 정치적 욕망에 오염되어 있다.
‘미국 헌법을 읽다’는 미국 헌법을 사례로 들어 헌법의 그러한 측면을 명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1787년 초안이 마련된 미국 헌법이 인기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 제일 잘 나가는 국가의 헌법이라는 현실적 이유다. 다른 하나는 지금도 헌법적 사안이 생기면 헌법 제정자들의 원래 뜻이 무엇이었는지 되묻는 미국의 문화다. 미국 헌법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게 한다. 이 책은 그런 지나친 이상화를 깨는데 도움을 준다.
우선 ‘동양 못지 않게 서양도 근대 전환이 힘들었다’는 저자의 과감한 선언이 눈길을 끈다. 대만인인 저자는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 “서양의 변화는 동양보다 수고로웠다”고 단언한다. 근대화라면 동양은 대개 시련, 아픔, 비극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서양은 침략했고 동양은 당했다고 생각해서다. 그 때문에 서양은 자연스레 이행했고, 동양은 충돌과 비극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거꾸로 “17~18세기 이후 서양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낡은 전통 양식과 시스템이 매우 짧은 시간 찢기고 와해되고 전복되어 대단히 다른 양식과 시스템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면서 “완성된 답안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옛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매번 재차 생각하고, 거듭 논의하고, 내적으로 일진일퇴의 분투를 벌여야 비로소 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서양 또한 후진적인 전통사회였던 것은 매한가지였고, 참고할 선례가 없었으니 더 위태로웠다.
다음으로 그렇기에 저자는 ‘현대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 이 시대에 민주주의를 부정할 이는 없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모두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기에 ‘전통 고전’도 읽어야겠지만, 지금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읽어야 할 것은 서양의 현대 고전이다. 민주주의라면, 유교의 민본정치 같은 것보다 미국 헌법 그 자체를 먼저 들여다 봐야 한다.
이렇게 토대를 다진 뒤 저자는 미국 헌법에 드리워진 ‘신성한 아우라’를 걷어낸다. 미국 제헌회의, 그러니까 1787년 소집된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장을 가득 메운 건 ‘사심 없이 오직 조국의 앞날만을 걱정했던 헌법 제정자들의 영웅적인 노력’이 아니었다. 회의 참가자들은 13개주 공동시장 형성을 위한 통상 협정을 마련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영국 정부에 대한 반란으로 나라가 세워졌으니, 또 다른 중앙정부를 만들자고 했으면 애초에 회의가 성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이 회의는 자신들이 “헌법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던 회의”였으며, 내심 불만이 있어도 자기 주로 돌아가 헌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결시키면 그 뿐이라는 생각에 대충 토론하고 찬성해버린 회의이기도 하다. 미국 의회 이름이 영국식으로 모여서 토론하는 ‘Parliament’보다 설렁설렁 모여 회의하다 결론 나면 좋고 안 나면 그만인 느낌의 ‘Congress’로 정해지고, 대통령을 집행자 의미가 더 강한 ‘Governor’ 대신 동아리 회장 느낌이 강한 ‘President’란 단어로 표기된 건 그 때문이다.
미국 헌법을 읽다
양자오 지음ㆍ박다짐 옮김
유유 발행ㆍ358쪽ㆍ1만5,000원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양자오 지음ㆍ조필 옮김
유유 발행ㆍ294쪽ㆍ1만5,000원
그렇기에 이 책은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몇 가지를 던져준다.
먼저 제1권력인 입법부. 정치를 싸잡아 비판하길 즐기는 우리는 늘 입만 열면 의원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다. 그런데 의회는 ‘대표’하는 기관이다. 현자를 엄선해서 고르는 게 아니라 지능과 도덕성이 전국 인민의 평균치에 가까운 사람이면 된다. 의원의 수준을 높이겠다며 보통 사람보다 100배는 똑똑한 100명의 사람들을 골라다 의회에 주입하는 건 ‘대표’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회가 우리를 짜증나게 한답시고 국회에 침을 뱉는 것은, 우리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우리를 아주 잘 ‘대표’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행정부. 행정부는 늘 ‘제왕적 대통령제’가 논란이다. 그런데 미국이 대통령제를 택한 건 단기적 제왕을 만들기 위함이다. 저자는 이를 ‘영국 왕이 싫어서 독립한 미국이 선택한 하나의 정치적 실험’이라 표현한다. 대통령제는 의회, 특히 하원의 폭주를 막고, 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며, 국왕이 있는 유럽과 대등하게 교섭하기 위한 제도다. 이 때문에 우리는 내각 정부냐 청와대 정부냐 하지만, 미국은 내각 자체가 그냥 대통령의 비서 조직이다. 우리는 각료를 장관이라 부르지만, 미국은 모두 ‘Secretary’다. 국방장관은 ‘Secretary of Defence’다. 대통령제 자체가 제왕적 1인에게 행정권을 몰아주기 위한 제도라서다.
마지막으로 사법부. 사실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사법부를 정교하게 설계하진 않았다. 다만 독립적 판단 보장을 위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임할 수 없고 임금도 올릴 수만 있지 깎을 수 없도록 한 종신직으로 설정했다. 입법부, 행정부에 비해 훨씬 뒤쳐져 있던 사법부가 삼권분립에 걸맞는 수준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건, 거꾸로 그 때문에 독립에 기반한 전향적 판결이 가능해져서다. ‘양승태 대법원 사태’에 비춰 곱씹어 볼 주장이다.
같이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는 알렉시스 토크빌의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고든다. 저자는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을 평등에서 찾는다. 아니, 자유가 아니고? 한진그룹을 비롯한 각종 갑질 파문, ‘미투(#MeToo)’ 사태를 낳았던 성폭행 문화를 보고도 모르겠나. 평등해야 자유롭다. 평등에 기반하지 않는 자유는 언제든 회수 가능한, 가짜 자유다. 강연을 정리한 것이라 쉽고 대중적인 접근이 좋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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