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북미회담 조율 막중한 임무
성과 부담에 워싱턴 아닌 뉴욕행
趙는 협상완료 대외적 과시 목적
北, 클린턴 면담 등 대대적 보도
남북대화 분위기에 미국行은 같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30일(현지시간) 북한 최고위 인사로는 18년 만에 미국을 찾으면서, 자연스레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 총정치국장(인민군 차수) 방문과 비교되고 있다.
우선 방문 목적이 다르다. 김 부위원장은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 방안을 조율하고자 미국을 찾았다. 다음달 정상회담을 차질 없이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적지 않다.
조 차수의 경우 방미에 앞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찰스 카트먼 미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가 닷새간 사전 협상을 한 만큼 성과를 도출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무게가 실린 방미였다. 당시 조 차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로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북미는 ▦양국 간 적대관계 청산 ▦북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 포기 ▦미국 대북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 ▦클린턴 대통령 방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채택했다.

당시 조 차수가 클린턴 대통령과의 만남을 예정하고 워싱턴으로 직행한 것과 달리 김 부위원장은 일단 워싱턴이 아닌 뉴욕으로 향했다. 어떤 성과를 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 수도에서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김 부위원장의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방문 예정 사실을 밝히면서 김 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만남이 확정됐다. 회담 성과가 긍정적이었다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매체는 김 부위원장 평양 출발 이틀째인 31일까지도 관련 보도를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조 차수의 평양 출발, 미국 도착, 대통령 면담, 귀국 등 개별 일정이 신속하게 보도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은 조 차수 방미 8일 전부터 “김정일 동지 특사가 미국을 방문한다”고 예고했다.

다만 남북 간 대화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미국행이라는 점은 공통 분모다. 조 차수 방미 4개월 전인 2000년 6월 남북은 첫 정상회담을 가졌고, 김 부위원장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26일) 나흘 뒤에 비행기에 올랐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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