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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캠프’ 야묵… 시리아 전쟁의 또다른 피해자들

입력
2018.06.01 18: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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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군 공격을 받아 완전히 폐허로 변해 버린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의 ‘야묵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지난달 22일 모습. 전날 시리아 정부군은 2011년 내전 발생 후 처음으로 수도권 지역 전체를 반군 및 이슬람국가(IS)로부터 완전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한때 시리아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였던 이 곳은 이제 ‘죽음의 캠프’가 됐다. 다마스쿠스=EPA 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 공격을 받아 완전히 폐허로 변해 버린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의 ‘야묵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지난달 22일 모습. 전날 시리아 정부군은 2011년 내전 발생 후 처음으로 수도권 지역 전체를 반군 및 이슬람국가(IS)로부터 완전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한때 시리아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였던 이 곳은 이제 ‘죽음의 캠프’가 됐다. 다마스쿠스=EPA 연합뉴스

추방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몰려

시리아의 13개 캠프 중 최대 규모

난민들 反아사드 시위에 참여하며

시리아 정부군이 공격... 물자 차단

이후 IS에 점령ㆍ시리아 정부군 재탈환

갖은 수난에 ‘제2 고향’도 산산조각

지난달 21일 시리아 정부는 수도 다마스쿠스 남부 외곽에 위치한 ‘야묵(Yarmouk) 팔레스타인 난민캠프’를 이슬람국가(IS)로부터 전면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19일 정부군의 대 IS 공세가 시작된 이래 한달여 만이었다. 이로써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7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전체를 통치 권역에 두게 됐다. 시리아인권관측소(SHRC)는 야묵에서 퇴출된 IS가 아사드 정권과의 ‘비밀합의’ 아래 남쪽 방향 시리아 사막으로 향했다면서, IS 개별 대원의 무기 소지는 허용됐다고 전했다.

이번 ‘야묵 전투’는 시리아 내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통과 딜레마를 반추하는 계기가 됐다. 시리아 전역에는 13개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가 있다. 다른 주변국들과 마찬가지로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사는 1948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 이스라엘 건국에 즈음해 팔레스타인인 70만명이 축출된 사건)와 함께 시작됐다. 당시 시리아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은 7만~8만명에 달한다. 야묵 캠프는 1957년 형성됐다.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에 따르면 2013년 11월 당시 시리아 내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56만4,691명이었고, 이 가운데 27%(15만 2,000여명)가 야묵 캠프에서 지내고 있었다. 야묵 캠프는 시리아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였다.

하지만 현 상황은 딴판이다. 지난달 전투 이전, 야묵 캠프에 남아 있던 난민들은 불과 1만 8,000명 정도였다. 이렇게 급격한 인원 감소가 일어난 까닭은 ‘반(反)아사드’ 시위다.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시리아 항쟁 초기엔 시위에 가담하곤 했는데, 야묵 캠프에서도 2012년 7월 아사드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그 해 12월 정부군은 이 곳을 공격했다. 이듬해 7월부터는 전기와 물, 물자 공급도 차단됐다. 봉쇄 구역이 돼 버리자 알카에다 연계 시리아 조직인 ‘알 누스라’를 비롯, 다양한 무장 반군이 둥지를 틀었다. 급기야 2015년 4월에는 IS까지 야묵에 들어왔고, 한때 캠프의 90%가 IS에 점령되기까지 했다.

지난달 24일 시리아 주민들이 최근 정부군이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환한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 야묵 캠프로 돌아오고 있다. 다마스쿠스=EPA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시리아 주민들이 최근 정부군이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환한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 야묵 캠프로 돌아오고 있다. 다마스쿠스=EPA 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의 이번 공세는 지난 3월 IS가 정부군 수십명을 참수한 데에서 비롯됐다. 친아사드 진영은 ‘대IS 공세’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폈고, 반아사드 진영은 “아사드 정권이 팔레스타인 캠프를 공격한다”면서 ‘팔레스타인 코드’로 맞섰다. UNRWA의 대변인은 “야묵은 죽음의 캠프로 변했다”고 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을 위한 행동그룹(AGPS)’에 따르면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시리아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최소 3,765명이다. 시리아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도 1,677명에 이른다. 귀향의 꿈을 부여잡고 두 세대 가까이 난민으로 살아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제2의 고향’ 난민촌마저 산산조각이 나면서 절망에 빠졌다. 시리아 전쟁이 이들에게 ‘2차 가해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리아 전쟁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이들의 활동 국가 간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야묵 전투에선 친아사드계로 유명한 ‘팔레스타인해방대중전선(PFLP-GC)’ 등 많은 조직들이 정부군 편에서 싸웠다. 물론,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이나 알 누스라, IS 등 극단주의 조직들도 팔레스타인 단체 또는 개인들과 결합돼 있다. 예컨대 2007년 레바논 북부 도시 트리폴리에 있는 ‘나흐르 알 바레드’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레바논군과 교전을 벌인 ‘파타 알 이슬람’은 이후 조직이 와해됐지만, 잔여 구성원들은 알 누스라나 IS 등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딜레마에 빠진 건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다. 2011년 이전만 해도 시리아 정부는 하마스를 동지로 대우했다. 대이스라엘 전선에서의 동맹관계, 그리고 하마스의 경쟁자이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파타(Fatah)와의 대립관계라는 두 축이 시리아의 대하마스 정책을 규정한 것이다. 시리아와 파타는 레바논 내전(1975~1990년) 과정에서 이미 틀어진 상태였다. 파타의 상위조직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1983년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바셰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의 부친) 정권하에서 축출당하기도 했다. 대신 시리아는 1998년 친서방 국가인 요르단에서 축출된 하마스를 받아줬다. 그 이후 하마스는 시리아에 근거를 두고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이란-(레바논의) 헤즈볼라-하마스’는 이른바 ‘저항의 축’을 형성, 대이스라엘 전선에서 공고히 연대해 왔다.

지난달 22일 시리아 정부군 소속 군인들이 수도 다마스쿠스의 ‘야묵 캠프’ 탈환 작전에 성공한 뒤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다마스쿠스=EPA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시리아 정부군 소속 군인들이 수도 다마스쿠스의 ‘야묵 캠프’ 탈환 작전에 성공한 뒤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다마스쿠스=EPA 연합뉴스

그러나 시리아 전쟁은 이들 간 ‘연대의 끈’을 변화시켰다.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중동정책평의회의가 내놓은 ‘시리아 반란의 부산물: 저항의 축은 끝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미샬은 2011년 초 아사드 정권에 ‘진정성 있는 개혁’을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사드 정권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하마스 측에 “아사드를 공개 지지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결국 이듬해 2월, 하마스 정부 총리였던 이스마일 하니야는 이라크 카이로에서 “하마스 운동은 시리아를 떠나 퀘타, 이집트, 가자지구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물론 상호 관계에 금이 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없다. 한치 앞을 예단키 어렵게 하는 변수가 무수히 많다. IS가 대표적인 외부 변수다. 이번 야묵 전투와 관련, 아사드 정권 편에서 싸운 팔레스타인 조직 가운데 ‘아크나프 바이트 알 마크디스(이하 아크나프)’라는 하마스 추종 세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2015년 4월 IS는 야묵 캠프를 치고 들어오며 아크나프 대원들을 참수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이 사건은 가자지구 하마스 대원들의 ‘복수 천명’을 낳았고, 그에 따라 아크나프도 아사드 정부군과 손을 잡고 대IS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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